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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중 숨진 아들 이름으로 기부-경향신문기사

복무 중 숨진 아들 이름으로 기부
각박한 세상에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들을 사람들은 들어보아라(존대말도 하기 싫은 사람들)!!!!

서로 돕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헐뜻고, 사기쳐서 남의 돈 착복하고

나라돈 빼먹고, 탈세하고 뇌물받아 챙기고, 페이파 컴파니 만들어 저 하나 잘먹고 잘살려는 판에 아름다운 기사가 경향신문에 보도되었기에(2013.6.20) 소개합니다.

전남 고흥군에 사는 김광부씨(73·사진)는 매달 15일쯤이면 읍내 은행을 찾는다. 은행에서 돈을 인출해 아름다운재단 앞으로 8만원을 보낸다. 7만원은 아들의 이름으로, 1만원은 자신의 이름으로 기부한다. 김씨가 매달 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은 11년 전이다. 이후 한 달도 거르지 않았다.

김씨는 26년 전 어렵게 낳아 키운 아들을 가슴에 묻었다. 김씨의 맏아들 유정씨는 1987군대에서 운동을 하다가 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24세에 사망했다. 젊은 시절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되었던 김씨가 집안 형편 때문에 환속하고 결혼해 낳은 귀한 첫아들이었다.

학창시절 내내 우등생이었던 아들은 건국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해 혈혈단신 상경했다. 농사를 지으며 5남매를 키우던 김씨는 서울에서 공부하는 큰아들에게 방도 얻어주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했다. 아들은 셋방을 전전하며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를 냈다. 학비와 용돈으로 쓰고 남은 돈을 집에 보내기까지 했다. 그렇게 어렵게 공부하다가 군대에 간 아들이 쉽게 생을 마감할 줄 몰랐다. 김씨는 남들은 한국전쟁을 겪고도 살아 돌아오는데 운동을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은 그 아이의 명이 거기까지였던 게 아니겠냐고 말하지만 목소리에는 아들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다.

 

사진 | 아름다운재단 제공

아들의 기억을 가슴에 묻고 지내던 2002년 어느 날, 김씨는 우연히 텔레비전에 아름다운재단의 기부 활동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됐다. 평소 자신의 집을 아름다운 사람 모임의 집이라고 이름 붙이고 마을 사람들을 집에 불러다 이야기하며 지내던 김씨는 아름다운재단이라는 이름을 듣고 눈이 번쩍 뜨였다. 아름다운재단에서 어려운 형편에 놓인 대학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기금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힘들게 대학을 다니던 아들을 떠올렸다. ‘아들과 같은 대학생들에게 아들의 이름으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아들이 사망한 이후 나라에서 나오는 연금의 일부를 기부하자고 아내와 상의했다. 아내도 선뜻 동의했다. 곧바로 아름다운재단에 연락해 연금의 10%를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처음에 3만원으로 시작했던 기부는 11년이 지난 지금 매달 8만원으로 늘었다. 아들 이름으로 7만원을 기부하고, 김씨 자신의 이름으로 1만원을 추가로 기부한다. “아들이 기부를 하는데 아버지가 가만히 있으면 되겠냐는 이유에서다.

김씨 부부의 수입은 아들 사망으로 나오는 유족연금 60만여원이 전부다. 지난해까지는 작게 농사를 지으며 벌어들이는 돈도 있었지만, 허리가 안 좋아서 올해부터는 농사마저도 그만뒀다. 이런 형편에 한 달에 몇 만원도 김씨 부부에게는 큰 돈이다. 하지만 김씨는 기부하러 은행에 가는 날이 가장 즐겁다고 말한다.

 

아들이 살아 있으면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됐을 겁니다. 자기처럼 어려운 형편에서도 공부하려 애쓰는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까 아들 이름으로 내가 대신 기부를 하는 겁니다. 아들의 영혼이 보고 있다면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김씨는 앞으로도 계속 기부를 할 작정이다. 그것이 아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