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일 수요일 제 23일째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 5시 50분

<출발>오전 7시 43분

<도착> 오후 3시 40분

<걸린시간>8시간 걸었다

<출발-------도착>

Foncebadon--------Ponferrada :26.9km

<날씨>

포근하고 쾌청하다 낮에는 뜨거운 햇살을 매우 고생을 더운 날씨로 변환

<숙소>Hostal Rio Selmo

지친 몸을 쉬기 위해서 알베르게는 피하고 hostel로 정했다( 40유로)

빨래는 빨래 방에서 4유로 건조 +4유로 해결

 

<오늘의 주제 1> 순례길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

산 길 가에 아름다운 봄꽃이 우리를 반긴다.

1515m를 돌아 돌아 내려가는 산길에서 어느 아가씨를 만났다.

함께 내려가다 헤어졌다. 한참 동안 내려오는 길 내내 아름다운 봄꽃이 산에 그리고 길가에 피어 있어 순례자의 마음을 달래 주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산에는 나무 꽃들이 이제 만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열심히 꽃 피울 채비로 활기찬 산기운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앞에 가던 아가씨의 손에는 봄꽃이 들려 있었다. 내려가면서 길가에서 팔짝 팔짝 뛰면서 이 꽃 저 꽃을 꺾어 한 손에 움켜쥐고 즐거워하며 앞서 내려가는 것이다.

“순례자가 꽃을 꺾으면 안되지.” 나는 생각했다

“Please Don’t You Cut wild Flower!” “순례길에서 자연을 훼손하면 안됩니다.” 라고 말해 주어야 하나 망설였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기본예절이 아닌가? 그러나 말하지 못했다.

그 아가씨 마음을 상할까 해서 말 못했다.

아 그런데 그 아가씨가 한국 아가씨라니? 놀랐다.

하지만 1년에 17만명 정도가 산티아고 순례길 온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떻게 될까?

햇빛 찬란한 날씨에 산을 내려오려면 2-3시간이 걸리는데 손에 든 그 꽃은 어떻게 되었을까? 순례길에서 만난 그 아가씨, 한 손에 꽃을 꺾어 들고 기분 좋게 산길을 가는 그 아가씨의 마음은 어떨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순례길을 가든 모두가 자신의 삶의 길이요, 방법이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은 과연 어떤 사람을 원할까?

오늘 하루 종일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순례길에서 만난 어느 아가씨의 마음이 알고 싶어진다.

 

<오늘의 주제 2> 주모경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바치는 주모경은 나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버탐목이요 디딤돌이 되었다.

순례길 걷기 23일째인 오늘까지 정말로 많이 바쳤다.

출발기도로서 그러했고, 힘들 때, 나의 몸에 이상이 신호가 왔을 때, 발이나 무릎에 통증이 있을 때, 걸으면서 묵상이 끝나고 생각이 쉬고 있을 때 주모경을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였다.

얼마나 많이 주모경을 바쳤는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모경을 이렇게 많이 바쳤던 기억은 없다.

발, 허리에 통증이 왔을 때 무조건 주모경을 계속 바치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사라진다.

힘들고 짜증스러운 길에서도 주모경을 계속 바치면서 걷는다. 어느새 통과 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있어서 순례길에서의 고통을 극복 하는 길은 두말할 것 없이 주모경을 바치는 것이 몸에 배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할 셈이다.

주모경은 나에게는 순례길에서의 생명수와도 같다.

주모경을 바치면서 주님이 함께 하심을 기도하게 된다. 주님과의 만남을 기도한다.

주님의 뜻이 저를 통해서 표현되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의 묵상> 나의 존재는?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나는 사회의 일원으로 존재한다.

나는 나 자신의 삶의 주인공으로 존재한다.

나는 2세 교육을 위한 교육자로서 하늘의 사명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

나는 가장으로서, 부모로서, 남편으로서 존재한다.

나는 주님의 아들로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꾼으로서 존재한다.

그래서 오늘은 더욱 나의 존재 가치를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나의 존재 가치를 생각하며 나를 존재케 하는 주위의 이웃들을 위해서 나의 할 일을 정말로 열심히 했는지 반성해본다.

존재하는 자체만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는지 묵상 해본다.

산티아고 길을 걷는 우리를 위해 기도 하는 사람들이나 나를 응원해 주는 지인들에게 나의 존재로 인해 그들의 기도와 응원이 의미 있게 되도록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승화 시키고자 한다.

지인들이여

대자 대녀들이여

우리 가족 모두여

감사해요

무사히 마치고 돌아가면 나도 그들을 위해 응원하고 기도하는 일에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주제 3> 돌동산 위에 우뚝 선 십자가

1515m 순례길을 돌아 돌아 올라 돌동산 위에 세워진 무지 무지하게 크고 높은 십자가를 만난다. 보는 순간 나의 가슴이 뭉클했다.

어느 순례자는 털썩 주저앉아 눈물로 기도를 바친다.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는 가지고 있던 동전을 던지며 두 손 모아 정말로 간절한 기도와 함께 울음을 터트린다.

눈물로 기도하는 순례자들을 보며 사연 많은 순례자들이 순례길에서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있기를 나는 기도해 주었다.

예고 없이 만나게 되는 돌 동산 위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는 마치 하늘에 이르는 길 같기도 하다. 순례길을 22일 걸어오면서 소홀히 하였던 묵상을 반성하기도 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더구나 어제 22일째 묵상 주제가 십자가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나를 불행하게 하는 8가지 생각들을 십자가 하나 하나에 걸어 놓지 않았던가?

내일의 내 삶에서 나를 내려놓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다짐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갑자기 돌동산 위에 우뚝 선 십자가 탑은 나의 다짐을 더욱 굳게 만든다.

나는 다시 한 번 반성하고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이제는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주님의 뜻을 펼치는 사업의 도구로서 써 달라고 매달리는 마음으로 기도 하였다

 

<아버지/아들의 마음 나누기>

1515 m 산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돌길의 연속이었다

발목에 통증을 호소하며 걷고 있는 아들을 보면서 애처로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초조하고 조마조마 하기도 하다.

오늘은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더구나 오늘은 26.9km의 하산 길 모두가 돌 자갈로 이어진다. 오늘의 목적지 부근에서는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 쬐는 아스팔트 길로서 오르막과 내리막 길의 연속이다. 어떻게 지탱하고 걸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어우적 어우적 거리며 기진맥진한 몸으로 어렵게 내려 왔다.

아들의 끈기와 인내심, 하고자 하는 의지에 내가 아들에게 표현은 안하지만 감탄하는 하루였다.

그렇게 힘들게 Ponferrada 와서는 자기의 임무인 숙소 찾기 ,식사 준비 장보기, 세탁등 할 일을 해 냈다.

 

<오늘의 주제 4> 진정한 순례길을 체험하다

5월 4일 1515 미터를 굽이굽이 돌아서 올라가는 길은 돌길이어서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어제 숙소는 1440 미터 위치에 있었기에 오늘 1515m를 넘는 것은 그리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숙소가 있는 마을 맨 위에 대형 나무 십자가가 서 있었다.

숙소에서 아침 해돋이를 보았다. 동쪽에서 막 떠오르는 5월 4일의 햇살이 빛나는 가운데 바라보는 나무 십자가는 유난히 우리를 반기는 듯 했다. 오늘을 위해, 순례자를 위해, 십자가 앞에서 출발 기도를 바치면서 시작하였다.

그리고 정상 부분에 우뚝 선 십자가 탑을 지나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길은 작고 고운 자갈 길이다. 집는 발의 촉감도 좋은 길이었다.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중간 중간에 정성들여 만든 나무의자, 앉고 싶은 나무의자, 나는 오늘 걷는 이 길이 진정한 순례자들을 위한 길임을 느끼게 한다.

십자가를 보면서 출발한 오늘의 길, 어렵게 돌 자갈길을 올라 하늘로 이어지는 듯 높디 높은 돌 동산 위에 십자가를 바라본다.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주님께 바치는 십자가 기도이기에 진정한 마음을 담은 기도가 될 것이다.

이어지는 잘 정돈된 길에서 안정을 취하고 평화를 만끽하는 안락한 순례길, 이 길은 정말 평화로운 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뿐이다.

내리막길은 험하디 험하다. 더구나 돌길이다. 그렇지만 양 옆에는 아름다운 야생화가 순례자들을 응원하듯 반기며 웃고 있다. 산 여기저기에는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봄꽃을 자랑이나 하듯 피어나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산티아고 순례길이라는 것을 오늘 새삼 느껴 본다.

산티아고 순례길이여 영원하라….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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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일 화요일 제 22일째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 5시 5분

<출발>오전 6시 47분

<도착>오후 2시 30분

<걸린시간> 5시간 47분

<출발-------도착>

astorga-------- fonce badon : 25.6 km

<날씨>

7도의 기온과 쾌청한 날씨, 그렇지만 그늘은 쌀쌀하다. 낮에는 더울 정도의 날씨로 오르막에서는 땀을 주체할 수가 없이 흘러내린다.

 

<숙소> Alb Monte Irago

<순례길의 풍광>

숙소에서 나와서 도심을 벗어나자 계속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이다.

도로가에 만들어진 순례길이어서 요란한 차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다.

차도를 벗어나는 길은 산 속으로 이어지는 길이어서 운치가 있는 길이다.

오늘 목적지가 1,300여 미터의 높은 지대로 계속 오른다. 산이 높아지면서 나무들은 키가 작고 고산 지대에 사는 식물의 분포를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지 못한 꽃들이 많이 피어 있었다.

fonce badon에 이르기 전 4-5 km 전에 산 속으로 이어지는 곳에는 야생 동물들이 나오지 못하게 구멍이 큰 그물망을 설치해 놓았다. 그 길이는 약 1km 정도였다. 그물망에는 순례자들이 걸어 놓은 나무 십자가는 설치 예술이다.

순례자들의 생각과 고뇌와 어려움을 달래기 위해 아니 주님께 의지 한다는 생각들이 그대로 녹아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 나무 십자가에는 무슨 사연들이 있을까

나는 이를 보며 걸으면서 예수님의 고통은 생각하게 된다. 순례길에서 겪는 고통과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돌길로 된 산길을 걷고 있을 때 앞에서 열심히 혼자 걷고 있는 여인을 만났다.

브엔까미노! 반갑게 맞아 준다.

대화를 하였다. 37세에 캐나다 아가씨다. 캐나다 이야기, 한국의 이야기 어려운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 이유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순례길에서 캐나다에서 온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밝은 표정의 캐나다인들,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우리와 비슷하다. 가족 이야기도 함께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오르는 길은 가벼웠다. 아마도 5월13 일 끝나는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은 우리와 같다. 아마도 자주 만날 지도 모른다는 인사를 나누고 서로의 화이팅을 빌며 헤어졌다.

오르고 올라 fonce badon 언덕 위의 마을에 도착하여 내려다보니 풍광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같은 시원스럽고 아름다운 풍관이다. 장관이다

 

<오늘의 묵상> 십자가

한국에서 순례길 걷기를 준비하면서 순례길에서 매일매일의 묵상 주제 목록을 만들어 왔다. 물론 그대로 되지 않을지언정 며칠 동안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만들어 가지고 왔다.

바로 오늘이다.

오늘은 묵주기도로 고통의 신비를 바치는데 고통의 신비 4단을 기도하는 중간에 갑자기 십자가가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 오늘 묵상 주제로 ‘십자가’로 하자. 묵상 주제를 십자가로 정했다

오늘 출발하면서 프란체스코 아씨씨 건물을 지나자 바로 길가에 아침 일찍인데도 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도록 한 분의 봉사자가 안내하는 작은 성당이 있었다. 얼마나 반가운지 …

기도하고자 하는 순례자들을 기다리는 듯 했다. 입구에는 여러 나라 말로 써 져 있는데 한글로도 “신앙은 건강의 샘”이라고 쓰여 져 있었다. 정말 이국땅에서 한국 순례자를 위한 안내문이 있으니 기쁘고 힘이 저절로 생겨남을 느꼈다. 성체조배를 하고 걷는 걸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길가에 십자가 설치물을 만났다. 이어지는 십자가 설치물들.

오늘 묵상 주제를 십자기로 정한 날이라서 그런지 십자가 설치물들을 여러 개 만날 수 있었다. 의미 있는 날이 아닐 수 없다. 숙소까지 오는데 무려 9곳에서 십자가 설치물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의 순례길은 다른 날의 길과는 사뭇 달랐다.

더욱 특이한 것은 산속의 길을 걷는데 야생 동물로부터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길가에 숲 쪽으로 구멍이 큰 그물망을 설치하여 놓았다. 그 길이가 어림잡아 1.5km 정도는 될 듯 싶다.

그물망에 순례자들이 십자가를 무지 무지하게 많이 빈틈없이 걸어 놓았다.

장식물이라기에는 고뇌와 고통 등 순례자들이 담아서 걸어 놓은 십자가에서 순례자들의 사연들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약속하기도 하고, 내 삶에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덜어 달라는 기도라든지, 순례자들의 안전을 기도 한다든지, 크고 작은 무수한 사연들이 여기 걸려있는 십자가에 담겨져 있을 것이다. 나도 작은 소망(말할 수 없지만)을 기도하였다.

오늘 묵상 주제로 십자가를 정해서 그런지 이런 길을 걷는 내가 이렇게 많은 십자가를 만날 수 있음은 신비로운 일이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나에게는 신비의 길이 아닐 수 없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8가지 생각”의 저자 크리스토퍼제이미슨은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8가지 생각을 다음과 같이 지목하였다.

즉 육체에 관한 것으로 3가지 탐식, 음욕, 그리고 탐욕이다

마음과 정신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으로 3가지 분노, 슬픔 그리고 아케다(무심함)이다

영혼에 관한 것으로 2가지 허영심과 교만이다.

여덟 가지 생각은 언제든 우리의 안녕을 방해 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생각들은 우리를 균형에서 벗어나게 하며 행복으로 가는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내몬다. 이들을 우리 안에서 출현하지만 때로는 우리 자신보다 커 보여서 마치 바깥에서 우리를 공격해 오는 것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서 사막의 교부, 교모들도 이를 악마라고 불렀다고 한다.

나는 이 8가지를 만나는 십자가 설치물에 하나씩 하나씩 걸어 놓았다.

그렇게 십자가 설치물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하나씩 걸어 놓고 걸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8가지를 다 걸어 놓을 수 있었다. 숙소까지 오는데 십자가 설치물이 8개였던 것이다. 그런데 숙소가 있는 산중턱 마을 fonce badon에 도착하여 보니 마을 꼭대기에 대형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가?

마지막 9번째 십자가 설치물인셈이다.

이 십자가에는 내가 알아내지 못한 나의 인생의 무거운 짐을 마지막으로 걸어 놓기로 했다.

마음이 홀가분하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내가 지고 가는 배낭의 무게, 내가 지고 가는 십자가라고 생각한다.

가족에 대한 십자가, 사회에 대한 십자가, 나 자신에 대한 십자가

주님은 나를 따르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무거운 십자가를 진 사람은 모두 나에게 오라고 하셨다. 십자가를 가볍게 해 주신다고 하셨다. 탐식, 탐욕, 음욕, 분노, 슬픔, 아케다, 허영심, 교만을 다 걸어 놓은 오늘 하루는 정말로 주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하는 날이 되었다.

‘주님 저를 통해서 주님의 존재를 표현하여 주십시오.’라고 늘 기도 한 것이 이루어지는 하루라고 좀 건방진 생각을 하게 된다. 주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제 세상에 돌아가면 내려놓는 삶을 살고자 한다. 신비한 체험의 날이다. 기쁘고 신비롭다. 주님께서 나를 보호해 주심을 느끼게 하는 하루였다.

십자가는 인생이 만드는 최종의 탑이라고 한다. 삶의 방향을 주님께로 향하여 십자가 탑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살아가련다.

 

<오늘의 주제> 길

길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길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길에서 나의 인생의 새 모습을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솔길, 넓은 길, 좁은길, 자갈길, 돌길, 모랫길, 흙길, 아스팔트 길

사람이 다니는 길, 짐승이 다니는 길, 기차가 다니는 길, 수많은 길이 있다.

인생길에도 또한 그 삶의 방법에 따라 길의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순탄한길, 험난한 길, 고속도로같이 잘 나가는 길, 굴곡이 있는 길, 고난의 길 등등 수도 없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길들은 우리 앞에 펼쳐진다.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전개 된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 하는가에 따라서 그 결과는 각양각색이다. 길은 신앙생활을 하는가에 따라,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냐에 따라, 낙관적이냐 비관적이냐, 적극적이냐 소극적이냐에 따라서 길을 가는 인생의 방향은 다양 해 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보람 있고 뜻 있게 살아가는 길을 우리는 택해야 할 것이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데 여러 사안이 발생 하게 된다.

불화의 씨앗이 되는 것이다. 순례길에서 생각해보니 길은 그야말로 참 삶을 위하는 인생의 길을 찾고 되돌리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느끼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이구동성으로 이러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렇기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짐하고 깨달음을 실생활로 돌아가서 순례길에서 마음 다짐한 대로 살고자 하지만 그렇지 못하여 다시 찾는 이들도 점점 늘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먹고 자고 걷고 생각하고 다시 찾고 다짐하는 이 단순한 삶이 산티아고 길을 걸으면서 경험하는 삶이다.

실생활에 가서도 그렇게 하려는 것인데 혼탁하고 복잡한 사회생활에서 그렇게 되지 않는 것에 한 숨 짓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길 중에 우리가 꼭 한 번 걸어 보아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뭇 사람들은 말하기를 사람들은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어 본 사람과 걸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닌가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오늘 아침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하고 바르셀로나로 가기 위해 비행기을 예약을 하였다. 아들이 하는 말인 즉 한국에 있는 여행사(우리가 거래하는 여행사) 사람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너무 하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순례길 완주 후 집사람과 아들 그리고 나 세 사람이 스페인, 이태리, 파리를 여행하기 위해서 이미 그 여행사에 맡겼던 터라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티켓 예약을 부탁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그것도 부탁이기에 하지 말자는 것이다. 누구에게 “부탁”하는 말을 제일 싫어하는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번 순례길에서 아들을 알게 된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이 되었다.

남에게 댓가 없이 부탁하는 것은 싫어 한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익히 전에도 느끼고 있었지만 절대로 남의 험담은 하지 않는 좋은 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제 삼자에 대해 험담을 할 때 그 말하는 사람은 다른 곳에 가서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해당하는 사람이 없을 때에는 절대로 남의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좋은 이야기를 하고 살아도 살아야 할 시간이 모자라는 데 언제 남의 험담을 할 시간이 있느냐는 것이다.

참으로 “아들의 좋은 점”이다. 이러한 장점을 찾아 낼 수 있었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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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일 월요일 21일째

<묵주기도 빛의 신비:청원>

<기상> 오전 6시

<출발> 오전 7시 48분

<도착> 오후1시 48분

<걸린시간>6시간

<출발------도착>

san martin--------- Astorga: 24.5 km

<날씨>

아침 기온이 섭씨1도다. 쾌청한 날씨이지만 무척 쌀쌀하다.

맑은 하늘은 항상 그렇듯이 깨끗하고 청명하다. 햇빛 또한 밝고 아름답다.

 

<숙소>Slervas de Maria

<순례길의 풍광 >

몇 안 되는 동네를 지나오는 길 외에는 차도를 따라 이어지는 순례 길이다. 풀과 어우러진 길로서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는 오직 한 사람만 다닐 수 있는 길이다.

오늘 순례길은 주의 집중을 요한다.

스틱을 짚지 않으면 도저히 균형을 잡을 수 없는 길이다.

24km 대부분의 길이 말 그대로 오솔길이다. 순례길에서 어제 저녁에 함께 했던 산티아고에서 온 Bienvenido Sanchez 그리고 벨기에에서 온 Evita를 다시 만났다. 무척 반가웠다. 함께 기쁘게 스냅 사진을 찍었다. 반가워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나누었다. 이런 것이 순례길에서 벌어지는 순수하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풍광들이다. 기쁨이 넘치는 하루였다.

 

<오늘의 묵상> 기쁨

누구에게나 기다리는 것이 기쁨이다

그러나 기쁨은 그것을 만나는 시간이나 만나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시간이 짧다. 하지만 모두 간절히 기다린다.

기쁨의 순간 뒤에는 반드시 허탈과 공허함이 따른다.

기쁨의 시간은 길지 않다.

시간을 길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 나누어야 한다. 하지만 기쁨을 맞는 정도는 그 앞에 얼마의 고통과 고뇌가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쁨을 맞는 자세와 기쁨 뒤에 어떻게 자기 마음 관리를 하느냐에 따라 기쁨의 지속 여부는 다르다. 나는 그동안 고통 뒤에는 반드시 기쁨이 있음을 경험하였다. 고통 뒤에는 기쁨이 따르니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이여! 그 순간을 잘 넘기라고 오늘도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바쳤다.

 

< 오늘의 주제 1> 부정/긍정

긍정과 부정은 함께 존재한다.

긍정/부정은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가짐을 갖는가, 아닌가는 반드시 훈련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의 노력이 필요하다. 긍정적인 삶을 살아가면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자세가 키워진다. 긍정적인 사고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긍정적인 사람이 된다.

또 긍정적으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의 장래는 늘 긍정적인 삶으로 이어진다. 그러한 사람이 늘어날수록 이사회는 긍정적인 사회가 되어 간다.

오늘 순례길에서 긍정/부정을 함께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본다.

나는 내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늘 부족함을 반성한다.

부족한 면은 주님께서 채워주시기를 기도하고 있다.

잘 될 거야, 믿는다. 그리고 노력한다.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 벨기에 아가씨 evita 그리고 스페인 사람, 아들과 나 이렇게 4명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정신, 그리고 산티아고 순례길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 또 스페인의 문화, 산티아고 길을 걸을 때 여러 가지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로 장시간 대화를 하였다.

매우 유익한 시간이었고 재미있고 화기애애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장시간 서로 통역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용을 떠나서 아들이 통역 하며 이루어진 대화를 통해서 나는 아들의 모습에 감탄하고 있었다.

물론 호주 유학을 다녀온 아들인지라 영어는 왠만큼 하겠지하고 생각했었는데 아들의 통역 능력이 아주 좋았다.

오늘 그 정도인지는 몰랐다. 순례길에 오지 않았으면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서 매우 만족하고 있다.

순례길의 날 수를 더해가면서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로서 그 능력을 점차 인정하게 되는 것은 아들과 함께 길을 걷는 우리들에게 내려주시는 축복이며, 아들을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맛보게 하였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의 주제 2> 순례길에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계획이 필요하다. 순례길에 오르기 전에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산, 기간, 알베르게, 나의 짐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 등이 우선 세워져야 하고, 다음은 매일 매일 수정 변경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자기의 건강과 예산, 날씨, 컨디션 등을 고려해서 계획을 점검하며 진행하여야 한다.

다음 날은 나의 컨디션, 날씨 등을 고려해서 어디까지 가야 할 것인가?

알베르게는 어디를 택할 것인가? 어떤 탬포로 걸을 것인가?

무엇을 어디에서 먹을 것인가?

검토, 검토, 점검, 점검하며 계획은 수정 변경해 가면서 진행하여야 하기에

매일 매일의 작은 계획이 필요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하루 이틀에 끝나는 것이 아니기에 장기적인 계획에서

매일매일 계획으로 수정하면서 진행하여야 완주할 수 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계획이 필요하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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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일 일요일 제20일째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시 20분

<출발>오전 6시 20분

<도착>오후 12시 30분

<걸린시간>6시간 10분

<출발-----------도착>

Leon----- San Martin: 26.5 km

<날씨>

-2도C를 예고 했으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춥다.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리다. 쾌청한 날씨다. 햇볕은 맑고 따뜻하다

 

<숙소>알베르게 Alb Viera

vieira 마을 초입에 있다. 주인이 친절하고 음식이 끝내 준다고 한다. 조립식 건물이긴 하지만 깨끗하고 시설이 양호하다. 묵었다 가는 사람들의 평을 남기고 간 것을 읽어보니 매우 흡족하다.

점심에 렌탈콩 수프가 매우 맛이 좋았다. 나중에 이름을 안 사실이지만 벨기에에서 온 아가씨 Evita와 함께 점심을 했다. 저녁에는 야채와 콩 수프 닭도리탕 야채샐러드 스페인에 와서 처음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포식했다. 저녁 식사 후 산티아고에 온 Bienvenido Sanchez, 벨기에 온 아가씨 Evita, 아들 그리고 나, 4명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였다.

Bienvenido Sanchez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이를 받아 Evita가 영어로 전해주면 아들은 이를 받아 나에게 우리말로 이어준다. 내가 우리말로 하면 아들이 영어로 Evita에게 해주면 Evita가 이를 받아 스페인어로 Bienvenido Sanchez에게 전해주는 형태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문화 산티아고 순례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정신은 단순히 먹고 자고 걷고의 반복이라고 한다. 바로 인생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은 퇴색 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게 여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너무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산티아고를 다녀 간 사람들은 다시 단순한 삶을 그리워하기에 여기로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성당에 비치 된 방명록을 가끔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받았던 감동, 느낌을 기록해 놓았는데 각각 순례자들의 개인적인 느낌과 긍정적인 말들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요즘은 순례길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흥청대는 느낌을 받게 되어 조금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이곳 San Martin 알베르게 주인 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친절하고 숙소를 4인이 쓰는 방을 2인이 쓰라는 것이다. 숙박비도 2인기준으로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순례길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서 맛있는 순서로 꼽으라면 이곳을 우선으로 꼽는다.

아주머니 이름은 에멜리안이다. 순례길을 안내하는 자리에서 이곳은 반드시 머무를 곳으로 추천한다.

좀처럼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데 이곳의 방명록에는 기록을 남겼다. 주인과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순례자를 행복하게 해 주는 알베르게이고, 그 숙소의 주인 에멜리안이다.

영원히 행복하세요

 

<순례길의 풍광>

오늘 우리들은 어제 하루 재충전을 했더니 몸이 홀가분하다

알베르게를 깜깜한 6시에 출발한다. 어제 저녁에 미리 꾸려 놓은 배낭을 주섬주섬챙기며 남들은 자고 있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온다.

세수도 못하고 아침 식사는 가면서 먹기로 하고 걷기 시작한다.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음료수를 배낭에 넣고 걸었다. leon 도시를 빠져 나오는데 만도 3- 40분에 소요되었다

새벽은 leon 시내는 조용하고 오가는 차나 사람도 거의 없다.

( 물론 외곽이라서 ) 한참 도시 중심가를 벗어 외곽 순례자 길 코스에 들어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순례자들이 거의 없었다.

앞에 한 사람, 뒤에 한 부부 정도 그 외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차도를 따라 옆길에 나아있는 순례자의 길이다. 오리지널 순례자의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리지널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앞에 가는 한국 부부의 모습에서 외로움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남편은 앞만 한번 보고 줄기차게 걸어가고 부인은 힘들어 하면서 뒤에 따라 터덜터덜 걸어간다. 아주 멀리 차이가 난다. 뒤에 가는 부인은 불평을 털어 놓는다. 이런 모습도 순례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간 쯤 걸었을까 표지도 없이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는 멈춰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고민 중이다. 옛날 같았으면 손바닥에 침을 밷어 딱 때려 침이 튀는 쪽으로 가련만 지금은 그렇게도 할 수 없다. 나이 탓이겠지. 여유가 없어서 그렇겠지. 아무튼 멈춰 서서 잠시 고민 중이다.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자전거 순례길을 가는 두 사람과 부인들도 주춤 주춤 한다. 그런데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던 스페인 중년 부인이 우리를 보고 차에서 내려서 순례길을 가르쳐 준다. 정겨운 장면이다. 스페인 사람은 모두 모두 순례자들을 반겨준다.

부엔 까미노! 알로! 하며 인사를 해 준다든가, 웃음으로 우리를 반기는 모습은 생활로 자리 잡았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 3>

아내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지난날에 크고 작은 나의 실수나 당신이 보기에 소홀함을 느끼게 한 점을 통회 합니다.

이제 얼마나 살까?

이제 당신에게 잘하면 얼마나 잘 하겠소만은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나의 모든 고집이나 욕심을 내려놓으리다.

당신 편에서 생각하고 당신을 우선해서 생각하며 행동할 것을 순례길을 통해서 다짐해 봅니다.

정말로 나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마음고생, 육체적 고생, 금전적 고생, 수도 없이 했겠지만 표현은 안하고 속으로 안으며 살아왔겠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나만을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 살아 왔음을 시인한답니다. 아들, 딸의 성장에도 나의 이런 삶의 방식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이제 반성하며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당신에게 글을 쓰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순례길에서 반성을 하며 글로 씁니다. 글로 다 쓸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내 뜻을 전하는 바이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것은 분명하지요.

어떻게 지난날에 당신이 받은 고통과 어려움의 삶을 내가 다 보상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내 삶보다는 당신의 행복한 삶을 돕는 일에 더욱더 열심히 하리다.

당신을 존경 한다고 하면서 존경하는 삶을 게을리 한 것도 또한 반성하오.

앞으로 우리 둘이는 서로 알콩 달콩은 서로의 성격 상 아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당신 없이는 못살아 하면서 살아갑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어느 수녀님에게

수녀님 안녕하세요?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녀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수녀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은 열어 몇 번이고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이기를 바랐습니다.

주님께서 하잘 것 없는 자에게 “동무”라고 하시면서 정겨운 표현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저는 그 표현에서 좀 더 열심히 기도하며 갈등 없는 신앙생활에 몰입하라는 주님께서 수녀님을 통해서 전해주시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당에 계실 때 저의 신앙생활의 멘토로 수녀님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신앙적인 갈등의 해결해 주시는 듯 수녀님께서 주신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8가지 생각”이라고 하는 책은 정말로 저에게는 소중한 책으로 다가 왔습니다.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 아니 먼 훗날에도 나는 이 책을 소중히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지침서로 삼겠습니다.

수녀님을 신앙생활에 멘토로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얼마나 힘드세요. 보통 정도가 아니시기에 메일로 수녀님께서 그런 표현을 쓰시지 않으셨을텐데 …

하면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 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대신 더 진하고 깊은 기도를 드리게 되는군요. “수도자의 길을 가시는 수녀님께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주님 사업을 이룩하시는데 확실한 주님의 딸로 자리 매김 해 달라”고 기도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묵상 주제> 성인들의 삶

순교로 신앙의 꽃을 피운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며 걸었다

어떻게 성인들은 순교로 예수님의 현존하심을 증거 하셨을까?

오늘날은 피의 순교는 없더라도 백색 순교를 택하는 삶을 왜 나는 살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천주교 신자라면 서슴치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일어서서 저항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 과감히 나를 버리고 그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용기와 결단이 부족한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반성하고 후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순례길에서 성인들의 삶을 묵상 하고 있다. 나는 왜 그런 삶을 못 살아가는가?

나는 왜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지 못할까?

야고보 성인의 전도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나는 그런 삶을 일부라도 닮기 위해 여기 오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나의 인생을 주님의 도구로 써 주시라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고통이 따를 때 그 고통을 이겨낼 수는 없을까?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노력하고 다짐하면서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려 보련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순례길에서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의 다짐이 더 굳어지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글> 부부

부부란 무엇인가?

다만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것이 부부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없다면 부부라는 단어가 존재 할까?

우리말에서 서로 같이 있어야 하는 말이 있다. 남편이라는 말은 아내가 있어야 존재한다. 아내는 남편이 있어야 존재한다. 여기서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저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부라는 말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서로 간에 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그것은 두 사람이 그냥 사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은 부부가 아니다.

그냥 두 남녀가 만나서 사는 것은 부부가 아니고 동거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동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동거하다 그냥 헤어지는 일명 이혼이다. 그래서 이혼율이 높은 것이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각각의 단어에 존재하는 본분을 다하지 못함에서 오는 현상이다. 순례길을 걷는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부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아내를 존중한다는 나의 말에 어느 신부님께서 소중한 존재로 아내를 생각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물론 소중하게 생각한다. 소중하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어서 못 견딜 정도, 없어서는 못 살 정도, 아끼고 아끼는 상태를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의 관계는 삶의 가치를 상승 시켜 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 사제님은 하늘에서 맺어 놓은 부부의 관계를 인간이 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듣는다. 부부들은 이러한 말씀을 깊이 새겨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잘 지켜야 진정한 부부가 아닐까?

순례길에서 부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며 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아내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다. 그 무엇보다도 순례길을 걸은 후 에는 아내에게 더욱 잘 해주고 더 많은 이해와 사랑을 표현하며 나보다는 아내를 더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로 기록 한다.

 

<수녀원에서의 소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4월 29일은 재충전을 위해 쉬기로 했다. 고급 호텔에서 순례길의 고통스럽고 어려움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쉬면서 재충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4월 30일은 알베르게에서 자고 다시 순례길을 가기로 했다. 싸고( 1인당 10유로와 세탁까지 책임)깨끗한 알베르게로 가느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가느냐 망설이며 갈등 하였다.

10유로 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동안까지 갈등하였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가기로 하고 찾아갔다.

무척 붐볐다. 하지만 침대로 가 보니 시트는 깨끗하였다.

복도가 트인 공간을 막고 이층 침대 여섯개씩 놓여 있는 것이다.

대형 합숙소 군대 막사 같은 분위기였다. 전쟁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갈등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아들은 순례자들은 이런 곳에서 자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나도 다 경험을 했다.

20일째 이런 곳 저런 곳에서 경험을 쌓아 온터라 문제 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은 갈등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이기는 하지만 선택을 현명하게 빠르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는 달라지는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일찍 선택하고 행동을 취했다면 이런 알베르게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안한다.

이 수도원의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순례자들은 오늘은 무려 2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일이 순례자들의 나라를 책임수녀님이 불러주시며 알려주신다.

오늘은 왠지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갈등을 긍정적으로 풀어 가려고 했다.

두 가지를 얻었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만나기 힘든 기회였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이기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저녁 기도회에서 수녀님들이 기도하는 기도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말 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 같은 것을 느끼며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 옆에 침대에 멋진 스페인 청년과 만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27일 동안 걸어서 leon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 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서로 교류 하자고 하였다. 이런 점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얻은 결과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의 갈등을 풀었다. 마음에 앙금은 사라졌다. 바로 이런 것과 같이 며칠 전에 묵상 주제가 현실로 다가오는 신비한 체험을 순례길에서 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 하루를 쉰 아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걷는 모습도 가벼웠다. 알베르게가 있는 도심의 수녀원에서 순례길 코스를 찾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아들은 정식 코스로 가지 말고 도심을 빠져나가는 다른 길로 가자는 것이다.

나는 아들의 의견에 따라 가면서 어떻게 이토록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그저 감탄만 하면서 따라가고 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내 외각을 걸었다. 30분 후 바로 순례길 코스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새삼 놀랐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 같은 길을 찾다니….

“어떻게 찾을 수 있니?”

“나도 잘 몰라요. 그냥 왔어요.” 말하지만 대견하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공간 지각력, 지역, 방향 감각이 뛰어났다.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 모래내 시장 부근의 친척 집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나올 때 방향감각을 잃었다.

어린 아들이 이쪽으로 가세요하고 안내하는 것이다.

틀림없었다. 늘 그랬다. 지형을 알고 방향을 찾는다. 넓은 주차 공간에서 차 있는 것을 찾는 놀라운 방향감각을 칭찬 해줬다.

순례길에서 길을 잃기 쉬운 곳에서는 늘 능력 발휘를 하였다. 알베르게나 순례자 안내소를 찾는다든지, 식당을 찾는 일은 아주 뛰어났다. 내 아들이지만 칭찬해 주고 싶다. 아버지인 나는 아들의 이러한 능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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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0일 토요일 제 19일째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 7시 18분

관광의 날이다. 재충전의 날이다

<숙소>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대형 합숙소를 방불케 하는 알베르게다(Benedictines Carvajal)

교실 같은 한 공간에 2층 침대 6개-8개씩 놓여 있다. 남 여 공간은 구분 되어있다. 명확한 구분은 없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함께 1박하게 된다. 방은 달랐다.

점심은 어제 저녁 에 갔던 중국 WOK부페. 오면서 성당 몇 곳을 방문하고 강변 공원, 시내거리풍경을 산책하였다.

스페인 사람들의 운전매너는 넘버원이다.

길을 건너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차는 무조건 선다.

경적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물도 깨끗하고 사람들의 표정은 여유가 있었다.

시골과는 다르게 순례자들에게 대하는 다정함은 적었다.

6시 특전 미사를 leon 대성당에서 드렸다.

<날씨>

햇빛 찬란한 맑은 날씨, 햇볕은 따뜻하고 그늘에서는 추위를 느꼈다.

 

< 아버지/아들의 마음 나누기>

아버지는 하나에 생각이 꽂히면 너무 집착 한다는 것이다.

좋은 뜻일까 나쁜 뜻일까

아들이 하는 말이다. 자기도 아버지 어머니 닮아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순례길을 함께 하면서 아들이 이러한 점도 알게 되어서 나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부자간에 서로 대화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순례길을 걷기에 있을 수 있는 시간들이다.

우리에게 내려주신 축복이다. 라고 생각하게 된다. 더 많은 이해와 교감이 이어져 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강요나 바람에 집착하는 것은 피해야 할 것이다.

넓은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 주는 것에 정성을 쏟고자 한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옛날 궁전을 개조하여 만든 호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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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일 금요일 제 18일째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청원>

<기상> 오전4시 20분

<출발>오전 6시 28분

<도착> 오후 2시 5분

<걸린시간> 7시간 37분

<출발------도착>

Rreliegos ----- leon: 26km

미사는 leon 대성당에서 오후 6시 미사에 참석하였다

<날씨>

맑고 무덥다

<숙소>

오늘의 숙소는 옛날에 왕궁을 개조하여 호텔로 만든 Paradores 호텔에서 관광 숙박을 하기로 했다.

숙박비는 215 유로에서 순례자에게는 할인하여 130유로 받는다.

쉬는 날 없이 잘 걸었다. 18일을 걸었기에 하루는 편히 쉬어보자. 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아내를 5월 15일에 만나기로 했기에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오늘은 마음먹고 관광숙박을 하기로 한 것이다. 아들이 인터넷으로 찾아 멋진 호텔을 예약 했다. 마침 순례자들에게는 거의 40%를 할인해 주었다. 순례자 여권을 제시 해 주면 할인해 준다. 순례자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다. 모처럼 호화로운 경험을 하였다. 시설도 좋고 분위기 최상이었다. 분위기 있는 욕실에서 푹 쉬고 나니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쫙 플렸다.

 

<순례길의 풍광>

마을을 지나지만 차도를 따라 만들어진 순례길이다.

대평원을 걷는 3일째 순례길이다. 흙길이어서 좋았지만 이어지는 자갈길은 발을 몹시 피곤하게 한다.

그러나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소리에 발을 멈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대도시 leon에 도착 한다.

leon에 들어와서 도심을 가로지르는 순례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이지만 순례길을 안내하는 표지는 정성껏 만들어져서 쉽게 찾아서 갈 수 있도록 땅 보도 블록에 박혀 있거나 벽에 붙여 있다.

나무에, 전신주에, 표지 목에 잘 표시되어 있다. 순례자들에게는 더없이 고맙기만 하다.

지역 도시마다 재료도 다르다. 그것만 보아도 지역마다 관심 정도, 돈을 투자한 정도를 금방 알아 볼 수 있다.

8 - 9 km를 도시 중심을 관통하는 길이 인상적이다

 

<오늘의 묵상> 갈등

여러 가지 갈등이 있다.

생활 속에서의 갈등

가족과의 갈등 사회적인 갈등

그러나 이 갈등을 잘 풀어 갈 때 앙금은 없어질 것이지만 풀리지 않을 때는 앙금으로 남아서 나중에는 불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갈등을 어떻게 풀 것인가는 사람들의 능력, 그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는 늘 긍정적으로 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잘 풀리지 않아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살곤 한다.

신앙적인 갈등에서도 비슷하다. 주님이 계시는가? 아닌가?

천주교의 여러 가지 형식들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형식들이 아닌가?

왜 형식들에 얽매어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가?

가끔 이런 갈등으로 나 자신을 괴롭게 한다.

순례길에서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가에 대한 갈등

또는 주님이 계시다. 계시다. 마음으로 다짐하지만 마음 한구석에 내가 스스로 자성적인 다짐에 다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가족과의 갈등 또한 긍정적으로 잘 풀어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아닐까?

순례길을 걸으면서 많이 고뇌 하게 된다.

갈등을 긍정적으로 풀고 그것을 푼 후 마음에 앙금을 없애야 한다.

오늘 순례길을 걸으면서 다짐하고 다짐한다. ‘갈등을 푸는 지혜를 주십시오.’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상하며 걷는다. 사회적 갈등이 주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으로 해결되어서 불화가 없는 평화로운 사회에 주님의 뜻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갈등은 반드시 평화를 결과로 나올 때만이 우리 사회는 발전하게 된다.

갈등은 원인을 제공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이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방향으로 서로 풀어 가려고 노력하여야만 평화가 오게 된다.

열린 마음, 열린 마음 하지만 정말로 갈등을 극복하고 풀어 가는 데는 반드시 열린 마음과 인내와 노력이 함께 하여야 풀린다는 것을 이 순례길을 걸으면서 깨닫게 된다. 주님 감사합니다.

 

<아버지/아들의 마음 나누기>

목표를 세우니 잘 걷더라.

오늘은 힘든 아들을 위해서나 나 자신을 위해 내일 (30일)은 Leon에서 쉬기로 한다. 아들과 합의를 하였다.

오늘은 걷고 내일은 좋은 곳에서 쉬면서 재충전하자고….

저녁도 조금은 괜찮은 곳에서 관광으로 스케줄을 운영하기로 했다. 그래서 호텔은 Paradore 로 마음을 굳혔다.

저녁은 중국식 뷔페 wok에서 하기로 했다.

아들은 즐거워 한다. 오늘 출발이 순조로웠다. 아들은 자는 곳, 먹는 곳에 따라 기분이 크게 좌우 된다. 기분이 격양 되어 스스로 흥분하는 눈치다. 걷는 것도 매우 활기차다.

26km 걷는 일정에 조금도 지침 없이 더구나 발목 고통을 쉽게 참아가면서 걸었다.

바로 이거다.

“목표가 있으니 (확실하고 좋은) 힘이 생긴다. 열심히 걷는다.

아들의 모습에서 인생의 삶을 생각한다.

목표가 뚜렷하고, 분명하고, 그리고 실천 가능할 때 현재의 삶과 행동이 활기차며 어떤 어려움과 고통도 참아가며 잘 해 낸다.

순례길에서 아들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아들의 삶의 목표와 비전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순례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오늘의 주제> 스페인의 햇빛, 물, 공기, 새소리

이토록 맑은 하늘, 햇빛, 공기 그리고 아름다운 새소리를 접해 본 적이 있는가?

스페인이라고 하는 나라는 하느님의 축복이 내려진 나라라고 순례길을 걷는 내내 느끼게 된다.

그 느낌과 감동을 어떻게 글로 정리 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래도 아쉬워 글로 표현하고자 한다.

정말 맑은 햇빛!

고국의 여러 지인들에게 사진으로 담아서 보내며 그저 감탄! 감탄! 감탄 하고 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하늘을 본다. 맑은 하늘을 보며 나의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키려고 한다. 저 하늘의 깨끗한 햇살,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 와서 보아야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주님의 은총이다라는 말 이외는 아무런 말로도 표현 할 수 없다. 나는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게 한다.

물은 어떠한가? 물이 얼마나 풍부하고 깨끗한 지 순례길의 생명의 수라고 말한다.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음수대에서 꼭지만 틀면 그냥 먹을 수 있는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콸콸 흘러나온다.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면 마실 수 있게 설치되어 있다. 스페인은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수돗물을 마음 놓고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순례길에서 만나는 물, 물 ,물

흐르는 강물

농수로 물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

정말 풍요롭다

스폐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 따라 걷는 길이다.

물이 우리와 함께하는 동반자다

축복 받은 스페인, 축복 받은 순례길, 물은 우리를 더욱 흥분 시키고 흡족하게 만든다.

 

맑은 공기!

순례길 내내 나는 코에 이물질이 전혀 없었다. 고국에 있을 때는 코에 끼는 이물질 때문에 무척 괴로워하고 가끔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순례길을 걷는 기간 동안 전혀 느끼지 못 했다. 맑은 공기, 오염 안 된 자연 때문일 것이다.

이에 한 가지 더 한다면 새소리!

이른 아침에 아니 어둑컴컴한 새벽에 야밤 도주 하듯이 알베르게를 나서면 반기는 것은 각양각색의 새들의 아름다운 지저귐 소리들이다.

넓은 평원은 지나거나, 산 속을 지나거나, 오솔길을 지나도 들려오는 아름다운 새들의 지저귐으로 만들어내는 교향곡은 아름답다. 그때 그때마다 새들은 각각 다른 곡들을 연주하며 되풀이 하기도 한다.

아름다운 새 소리는 우리의 고통스럽고 힘든 순례길을 축복해 주며 달래준다.

어느 때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새 소리를 들으며 머리 속을 텅 비우고 새소리에 심취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어느새 피로가 날아간다. 이 모든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매력을 느끼게 하는 매력 포인트들이다. 그래서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 길을 걷고 또 걷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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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일 목요일 제 17일째

<묵주기도 빛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시

<출발>오전7시 25분

<도착>오후 2시 52분

<걸린시간> 7시간 27분

<출발---------도착>

sahagun------ reliegos 31.5 km

<날씨>

흐리고 쌀쌀하다 10시 이후 해가 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쌀쌀하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햇볕은 강하다.

<숙소:알베르게> La Parada 2인 1실, 30유로, 새 건물로 쾌적하다

<순례길 풍광>

마을을 지나는 것을 제외하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차도를 따라 차도 옆에 순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이 거의 없어서 지평선을 향해 걷는 순례길이다. 흙길로서 걷는 데는 좋은 길이지만 지평선만 바라보고 걷고 있으니 걸어도 걸어도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미미하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서…

 

<오늘의 묵상> 통회

어제는 아들과 심한 언쟁을 펼쳤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가족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나는 우리 가정에서 아들, 딸, 사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근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처음으로 아들에게 했다. 나는 무엇보다 가족을 우선 순위로 놓고 있는 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는 말을 하니, 아들은 이 말에 대해 물론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제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내가 편하게 대해 주어서 아버지에게 말투나 대하는 태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쌓여서 아들에게 말을 했던 것이지만 아침이 되고 보니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의 할 말만 하시지, 왜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시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소통이 안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주 치욕적인 말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내가 평생을 살면서 그렇지 않도록 그렇게 살지 말자고 늘 나를 되돌아보면서 노력하고 노력했던 점이다. 내 일생 동안 가장 중점을 둔 행동 내용인데도 가장 가깝다고 하는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70년을 내가 잘못 살아왔음을 반성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일본 사람을 보는 견해 차이다.

전혀 일치 하거나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여정에서는 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아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한 일본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은 나와 같아 질 수 없다. 인정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들이 자기는 어느 때 하지 못한 효도를 하기 위해 이번 순례길에 아버지와 함께 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의 짐을 덜어주고 편히 모셔야 하지 않을 까?

그러나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하지 않고, 너무 힘들면 얼굴을 찡그리고 짜증스런 표정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 들이다.

나의 욕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솔솔 피어오르는 것을 나는 기도하며 참고,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지 내가 깊이 반성해야지 하며 나는 통회 한다.

일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적인 견해를 얘기를 하니까 아들이 일본 사람 그들이 나에게 해 되는 일을 했는가?하고 되묻는다. 역사적인 문제나 우리 국민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아라.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니? 하지만 단체적인 문제 우리나라를 위하는 행동 등은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일본 사람 개인 개인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기에 개인에게 또 일본인 모두를 싸잡아서 적대 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

우리들이 순례길에 오른 것을 알고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도록 광영동 성당의 대자 대녀들이 매일 미사 봉헌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아들은 왜 기도를 하고 미사 봉헌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과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순례길 걷기는 엄밀히 말해서 내 개인의 문제인데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저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염려와 도움이 있기에 존재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들의 이러한 생각은 이기주의적으로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닌가?

통상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 이러한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후에도 이런 문제는 더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는 나의 과제다.

아들과 아의 관계에서 나는 크게 반성한다.

내가 아들을 잘못 키운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아들의 삶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하락하지 않는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를 몹시 괴롭게 한다.

순례길을 완주한 후에 책으로 남기고, 모임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거라는 말에 아들은 나에게 말한 다.

그러한 일들은 순례길 걷기의 원래 목적에 왜곡된 것이 아닌가라고 나에게 묻는다.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고 남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논쟁을 펼쳤다 하지만 하지 않았어야 하는 말들이 아닌가?

아들과 이런 언쟁을 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를 알아 달라고 하는 말은 할 필요 없었다.

소통이 안 되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변명 할 필요도 없었다.

아들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아들 생각으로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게 끔 내가 행동 했던 것이 아닌가? 내 잘못이 아닌가? 이런 모든 점을 오늘은 깊이 반성하며 침묵으로 순례 길을 걷고 있다

가슴을 치며 내가 70 평생을 잘 못 살아온 것을 크게 후회하며 반성을 하고 반성하며 걷고 있다.

오늘은 말 그대로 통회의 순례길이요. 통회하는 하루가 되었다.

 

<오늘의 주제 1> 주님 저와 함께 하시나요?

아침 숙소를 나오면서 오늘은 나의 인생에서 잘 못 생활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내용으로) 모든 것들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주님께 속죄하는 순례 길을 걷고자 한다.

혼자 걷는다.

나를 채찍질하며 걷는다.

침묵으로 묵상하며 걷는다.

이렇게 걷고 있다.

10시 50분경 오늘 순례길에서 첫번째 맞이하는 마을에 이르렀다.

아 ! 성당 있구나.

사진을 찍으면서 성당으로 가고 있는데 300m 앞에 가까이 가니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문이 열려 있겠구나. 성체조배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뛰었다. 매우 기뻤다.

오늘 오전 내내 깊은 반성을 하며 걸었기에 오늘의 성당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평화롭게 하였다. 이어서 할머니 두 분이 성당으로 들어가면서 스페인어로 무슨 말을 우리에게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다만 순례길 스탬프를 찍을 수 있고 미사가 있다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대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신자는 할머니 두 분만 앉아 계셨다. 성체조배와 묵상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이 입당 하신다

11시 미사인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7시부터 지금까지 통회의 기도를 하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닌가?

‘얼마나 힘드냐?’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니?’

‘와서 쉬거라.’

그리고 ‘괜찮다 잘 될 거야’ 라고 하시는 말씀이 미사 중에 들려오는 듯하였다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미사를 끝나고 성당 밖에서 쉬고 있는데, 신부님이 자전거를 타고 사제관으로 가시는지, 다른 곳으로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보시고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으시며 축복 기도문과 싸인까지 해주시며 우리를 위로 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함께 사진도 찍으시고 우리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계속해서 기도를 해주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와 함께 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응답을 받은 하루였다.

오늘 이후의 순례길은 환희에 찬 발걸음으로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제 2> 채찍질

순례길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곤 한다.

지금까지 잘 못 살아온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잘 못 행동한 것에 채찍질을 하는 순례길이 되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아무 거리낌 없는 삶으로 가기 위한 채찍질이다.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가?

채찍질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주모경을 끊임없이 바친다.

그러면 다시 채찍 맞은 상처는 아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채찍을 맞은 상처가 아무는 날 난 순례길 걷기를 마치게 될 것이다.

순례길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으며, 순례길 길에서 나 자신에게 하는 채찍질은 나의 앞으로의 삶을 남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으로 재탄생 하도록 만들 것이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 기록적인 순례길 걷기 41.1km 때문일까?

진하고 진지한 아들과의 대화 영향일까?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어색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순례길은 각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나는 나의 길을 걸으면서 침묵의 기도가 이어진다.

아들은 아들의 길이 있고 고뇌가 있고 스스로 깨달음이 있었으면 하는 기도 만이 아버지로서 할 일이라고 나는 오늘 생각하고 무언의 대화로 오늘을 마무리 한다.

순례길의 목적을 다시 재점검하기를 기대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제안 하지도 않는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며 살고자 합니다.

아들에게 무언으로 전달되리라고 믿는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순례길 풍광
순례길 풍광
아들과 함께 4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현지 신부님이 축복의 글을 주신다
성당모습

 

성당 종 탑에는 황새들이 둥지를 틀고...

 

순레길의 풍광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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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일 수요일 제16일째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25

<출발>오전 6시 이십오

<도착>오후 433

<걸린시간>10시간 8

<출발-----------도착>

Carion----- sahagun: 41.5km

<날씨>

쾌청한 날씨였으나 오후 들어서면서 구름 낀 하늘로 바뀐다.

낮에 햇볕이 있어도 춥다. 아침부터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리고 추웠다.

아직까지 이곳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다른 해 같으면 4월 하순에는 추위가 없는데 올해는 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나쁘지는 않다

<숙소> hostal LaCodorniz 2인 실

우리나라의 모텔 수준이다 오늘은 10시간을 걸었기에 기존 알베르게를 피하여 조용히 쉬기로 했다.

 

<2단계 순례길 수정> (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17KM의 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신앙인의 길, 치유의 길, 기도의 길, 묵상의 길, 눈물의 길, 웃음의 길, 배려의 길, 고통의 길, 기쁨의 길, 대화의 길, 자신과의 싸움의 길, 환희의 길, 물과 함께 하는 길, 새소리와 함께 하는 길, 만남과 헤어짐의 길,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 커피와 함께,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길, 사귐의 길, 외로움의 길, 다짐의 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구체적인 설명을 붙인다.

-왜 신앙의 길인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야고보 성인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위해서 이길을 걸었다. 지금도 가는 곳곳에 성당이 중심이된 마을이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성체조배도하고 기도도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한다. 정말로 신앙인이라면 꼭 걸어야하는 길이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나를 생각해 보고 고통을 참으며 자기성찰의 시간의 연속이기에 나는 신앙의 길이라 말하고 싶다.

-왜 치유의 길인가?

모든 운동의 기본이 걷기이고 가장 좋은 운동이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이다.

걸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 진다. 특히 당뇨 혈압 심혈관 질환에 좋은 운동이 걷기 운동이다. 먹는 것을 거칠게(즉 과식하거나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한 음식이 아님) 먹을 수밖에 없고 간단하게 심지어는 걷기위해서 먹는 정도이기도하다. 전 구간을 걸으면 보통 5-10kg은 체중이 빠진다. 그러나 작은 질병은 치유된다.

-왜 기도의 길인가?

나의 경우 깨어 잇는 한 늘 기도 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던지 고통이 따르던지 기쁨의 순간에 기도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도하며 걷는다. 기도하며 생활한다. 그러니 기도의 길이 된다.

-왜 묵상의 길인가?

묵상하며 걷는다.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하게 된다. 묵상하게 된다.

-왜 눈물의 길인가?

감격의 눈물, 통회의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름다운 풍광에, 고통스런 아픔 때문에 자기를 되돌아보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느 때는 멀리 떨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눈물의 길이다.

-왜 웃음의 길인가?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이 결정해서 와서 걷고 있다. 물론 끌려서 마지못해 걷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왔다고 하더라도 걷다보면 이 길에 매료 된다. 하루하루 고통을 참고 견디다보면 즐거움과 환희를 맛보게 된다. 여하튼 걷는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하고 웃으며 즐기고 웃으며 반기는 모습을 본다. 기쁨과 환희 해 냈다는 뿌듯함에 늘 웃는 생활로 하루하루를 즐기며 걷는다. 웃음이 넘치는 길이다. 언어 피부 외모 상관없이 웃음이 넘친다. 웃음의 길이다.

-왜 배려의 길인가?

걸으면서, 알베르게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샤워장에서 순례자들은 남을 배려한다. 차츰 배려하는 생활을 배우게 된다. 자국민을 만나도 그들은 순레자들을 크게 배려해 준다. 건널목에서나 교차로에서 그리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순례자들을 크게 배려한다. 그들의 행동에 늘 감탄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배려를 배우고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왜 고통의 길인가?

800km를 걷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이 따른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을 맞게 된다. 갑자기 닥치는 육체적인 고장을 접하게 된다던지 음식이나 물이 맞지가 않아서 겪는 고통, 잠자리에 따른 고통,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니 그에 따른 발생하는 일들이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따른다. 또 도사리고 있다. 매일 매일 앞에 다가오는 도로사정이 나에게는 고통의 순간으로 닥쳐오게 될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고통의 길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극복해야하는 것은 각자의 해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산티아고에 입성하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그순간을 생각하며...

-왜 기쁨의 길인가?

무거운 배낭을 지고 비바람을 이겨내며 그날 그날 해 냈다는 기쁨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매일 매일 기쁨의 순간을 맞는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어려움을 참아가며 걷게 되는 것이다. 기쁨이 쌓이고 쌓여 순례길을 완주하게 된다. 기쁨은 산티아고에서 완주증을 받는 순간 극치에 달한다.

-왜 대화의 길인가?

일 년에 산티아고 길을 약 17만명이 걷는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만나서 대화하며 걷고 또 숙소에서 나 카페에서 만나면 서로 대화를 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서로 나선다 너 스페인의 g 영지물 자연환경 만나는 사람 모두가 낯설지만 이들은 만나면 인사하고 마음을 다하고 서로 대화를 한다.숙 소나 샤워장 세면장 식당 또 걷는 길 만나는 곳곳 에대해서 서로 재미 있는 대화를 한다 회사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화의 길이라고 할 수 있

-왜 자신과의 싸움의 길인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어느 때는 지루하고 오늘 때는 힘들고 오늘 때는 목 마르고 오늘 때는 덥고 오늘도 춥고 어른들은 비오고 바람불고 햇볕이 난다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 해야 한다 지칠 때도 있 다 더이상 걷지도 못 할 때도 있 다 또 몸이 아프거나 고장 난 때도 있 다이 모든 것 자기가 투자기반의 해결해야될 과제 다 또 자기 의지나 육체나 너는 정신적인 면에서 자기와의 싸움 이루어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신과의 싸움의 길이라고 하고 싶 다

-왜 환희의 길인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접하고 감동의 탄성을 지른다. 또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해냈다는 자부심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순간 순간에 환희를 맛보게 된다. 그래서이 길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환희의 길이라고...

-왜 물과 함께 하는 길인가?

스페인은 깨끗한 물이 풍부한 행복한 나라이다. 순례길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음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정말로 축복받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할 수 있 다 걸을때마다 놀까 옆으로 오르는 개울물 강물은 시원한물 소리를 내면서 순례자들을 위로 해 주고 있 다 개울이나 강에 흐르는 물이 너무도 많아서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내내 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풍족한 물은 우리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 준다.

순례자들을 위로해 주는 물소리를 들으며 물과 함께하는 순례길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왜 새소리와 함께 하는 길인가?

스페인은 오염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서 그런지 가는 곳곳마다 각종 새들을 볼 수 있다. 그 새들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다. 어둑 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서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을 걸어도 하늘에서, 들에서 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도시를 끼고 도는 변두리 길에서도 역시 들려오는 새 소리는 아름답다.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멈추게 한다. 이 새소리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왜 만남과 헤어짐의 길인가?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몇 몇 사람들이 함께 걷다가 얼마 걸어가면 자기 걷는 속도가 있기에 헤어진다. 새로운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 오늘 만났던 사람은 며칠 뒤에 다시 만나게 되고 만났던 사람이 헤어진다. 이렇게 계속 되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특징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길이라고 말 할 수 있 다

-왜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인가?

어느날 숙소에서 모임을 갖는데 그 숙소의 책임자가 오늘 우리 숙소에 묵는 사람들의 나라가 25개국이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다. 얼굴모양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세계 여러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다. 함께 걷기에 서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문화를 접 하게 된다.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이다.

-왜 커피와 함께하는 길인가?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순례길을 걷다가 중간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게 되었 다. 생전 처음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셔본다. 그후 나는 가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커피와 함께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길인가?

수 많은 나라에서 순례자가 이길에 모여든다.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다. 각 나라의 언어들이 교차하는 순례길이다. 흥미 롭지 않은가? 그렇게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아무 불편을 못 느낀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가 교차 하는 길이다.

-왜 사귐의 길인가?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진다. 거의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과 교차한다. 만나는 사람들은 정겹고 다정하게 서로 자기 얘기를 하며 순례길을 즐기고 있다. 함께 만나서 계속 쭉 걷는 사람도 있고, 한 번 만났다가 며칠 후에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만날 때마다 기쁨을 나눈다.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귐의 길이다.

 

<순례길 풍광>

숙소에서 나와 마을의 시멘트 길을 걷는 다.

이어지는 17키로 라는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길을 걷는다.

길 좌우 후에는 푸른 보리밭 밀밭 푸른 풀밭이 펼쳐진다.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평평한 흙길이라 걷는 데는 어려움은 없었다. 이후 terra di llos 까지 예정을 했다가 13.2km를 더 걷자고 아들과 합의하고 41.2 km를 걸었다.

대평원을 가로질러 걷는 동안 새소리를 원 없이 들었다. 계속해서 뒷바람이 도와주어서 걷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3단계로...>

3단계 순례길에 대하여 수정하는 하루였다

1단계 입문, 2단계 주님과 만남, 3단계 환희로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나누고 싶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3단계로 정리 할 수 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던 가서 부딪히며 해결하자고 왔던 처음은 낯설고 힘들고 어설프다. 적응하여 가며 걷게 된다. 그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에게는 처음 1주일이란 기간은 입문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로 1단계 입문 단계를 지나게 되었다. 적응하려고 노력도 했고, 왜 왔는가를 후회도 해보게 되고, 후회하려면 왜 왔는가? 마음도 다잡기도 하는 단계였다. 이것도 못한단 말인가! 나는 할 수 있어! 더 열심히 기도하며 걸어 보았던 시기이다.

2단계 주님과 만남의 단계이다. 주님! 저를 통해서 주님이 표현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매달리는 기도, 통회의 기도 등 많은 기도의 연속이라고 할까? 이 기간 중에는 많은 체험을 하게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을 수 있는 나를 찾게 되었다. 아들의 장점을 바라보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2단계로 주님과 만남의 단계라고 이름하고 싶다.

3단계 환희라고 부르고 싶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몇일을 걷는 단계는 분명 기쁨과 환희를 맞보게 된다. 보람과 통쾌함과 설렘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해냈다는 가슴 터지는 통쾌함은 그 누구도 맛볼 수 없다. 마지막 단계를 환희의 단계라고 부르고자 한다.

 

<두번째 흘리는 눈물>

17km 대평원의 길을 걸으면서 3단계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름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길에서 산티아고까지 565 km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목을 만난다.

메세타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행복한 눈물로 펑펑 흘렸다.

오늘 대평원 17km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 자연의 풍광,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감상이라기보다는 느낌이다.

맑은 하늘, 펼쳐진 푸르른 평원, 맑은 공기, 평화롭게 날며 노래하는 많고 많은 새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지평선 이 모두가 나를 황홀하게 만들며 행복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주님께 감사 하면서 두 번째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무척 행복하였다.

 

<오늘의 묵상> 주님 저와 함께 하소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기를 늘 기도 하지만 기도를 할 때나 생활을 할 때 나 실제 적으로 나는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함을 마음 아파하며 주님께 매달리곤 한다. 그리고 늘 고민하여 왔다. 오늘도 걸으면서 묵상한다. 주님! 저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제 나에게 와 닿았던 이야기가 있었다. “괜찮아 잘 될 꺼야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은 갑자기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명동 성당에서 신년 미사를 드리는 데 주교님께서 신자들이 한 해 신앙생활을 잘하라는 덕담으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화가는 자기의 그림에

작가는 자기의 글에 계속 관심을 가진다.

더구나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버리지 않으면 우리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세요.’

그렇다! 나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나를 분명 사랑하시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순례길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고, 순례길을 출발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몸의 가려움증 지금은 없어졌다.

좋은 날씨를 주셔서 날씨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서 즐기며 걷는다. 이곳에 올 때까지 지간신경증으로 발에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다가 왔기에 긴장된 하루 하루였지만 지금까지 아무 증상 없기에 감사한다.

순례길에 오게 해 주심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걸으면서 생각이 멈출 때, 고통이 따를 때, 힘들 때, 끊임없이 주모경을 바친다. 그러면 생각이 정리되고 통증이 없어지고 힘듦이 적어진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글 1>

어느 수녀님께

찬미예수님

보내주신 메일을 몇 번이고 열어보았습니다.

수녀님의 정성 어린 성원의 메세지를 읽고 정말로 우리 부자는 힘을 얻고 걷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곳 시각으로 오전 430분입니다. 한국 시각은 7시간 전이기에 저녁 930분 되겠네요

특히 오늘은 수녀님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날부터 수녀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주님께 수녀님의 영성 생활과 몸이 건강 하시를 기도드립니다.

**

+ 그리스도의 평화

답이 너무나 늦었습니다!

얼른 답을 드리고 싶었는데 제 마음 자리가 힘드니

넋두리 할까 걱정되어서 답을 못 드렸어요^^*

저는 무사히 안착하려고 하는 중이고요

사실 좀 어렵네요. 예상은 했지만...

모르고 시작하는 어려움은 겪어낼 수 있지만

미리 예상하고 시작한 어려움이 되려 더 감내하기

힘든 경우가 있죠? 지금 제가 그러네요!

그런데 길을 나서는 '동무'(그리 칭해도 되겠죠^^)

순례를 하면서 기억해 준다고 하니 그저 그 힘에 기대어 봅니다!

염치없이....

 

아드님과 함께하는 순례는 어떤 기분인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아요.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순례의 길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금 정비하시는 유스티노 형제님을 생각하며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 올려 봅니다. 힘이 되시려는지요....

 

서울과 산티아고!

오늘 또 하나의 기도 줄이 연결되었습니다.

그 어떤 와이파이 보다 강력한 영적 와이 파이로 연결되었으니

수신은 양호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유대는 더욱 끈끈해 질 것입니다!

아드님 이름 언제 알려주실 수 있으면 알려주세요.

함께 이름 부르며 기도 할께요.^^

 

한 걸음 한 걸음 복 되고 복 된 걸음이 되시도록

몸도 마음도 함께 무탈하시도록 기도 보냅니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동무'에게

늦은 답장으로 미안한 마음을 기도에 꾸꾹 눌러 담아 전하며..00수녀드림

**

이 메일을 읽으며 힘이 생기고 더욱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된답니다.

항상 밝은 미소로 신자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시고, 신앙생활의 바로 미터를 제시하시면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수녀님의 영적인 지도로 우리 신자들은 힘을 얻어 행복한 신앙생활하게 되었고, 우리 교회가 나아갈 사회적 교리를 실천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1887-1968) 신부님은

기도하십시오. 마지못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하는 사람은 위태롭습니다. 의지를 보시고 상을 주시는 것이지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신 것이 오늘 수녀님께 글을 쓰면서 더욱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신앙생활에서 나약해지고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게 되어 고민하고 어려울 때 친절하게 상담해주시고 조용히 바른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지금껏 잊지 않고 감사하게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글 2>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미안하군요.

오늘은 17km의 대평원을 걸으면서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너무 행복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혼자 온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 했답니다.

오늘은 태원이와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강요하거나 내 이야기를 가급적 많이 하지는 않기로 했으니 걱정 할 것은 없어요. 나는 그것을 지켰으니까요. 그런대로 태원이의 성숙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견하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내가 사람을 평가에서 대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덕목인데 태원이가 지적을 하더군요. 앗 차 싶었어요. 내가 잘 못살았구나. 반성을 많이 했지요. 당신 생각도 그런가요?

여하튼 아들 눈에 아버지가 그렇게 비쳐졌다면 변명할 여지 없지 않소.

지금부터라도 나는 낮은 자세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살아가리다.

오늘 미사는 4곳의 성당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미사가 없다고 하네요. 요양 병원에서 미사를 드렸어요.

또 다른 느낌이더군요. 환자와 노인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생의 마지막에서 어떻게 나를 처신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미사였어요.

감사합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괜찮니?”

, 참을만해요.”

쉴까?”

더 갈 수 있어요.”

굳건히 걸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대견함을 느낀다.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은 말한다. 소통이 안되고,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본인 말만 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해 주었다. 이는 아주 충격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절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점 또한 그 내용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말만 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고치려고 있는 사항이기에 그렇지 않다고 나는 어느 정도는 자신하는 부분이도 하다.

그런데 아들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충격이 아닌가?

70평생을 잘 못 살았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아들이 있어 늦게나마 나를 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제 나왔다고 하는 것도 아들의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것을 나는 좋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들, , 부인, 사위에 대하여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니 아들은 그 나름대로 본인의 입장을 이야기하여 주더군.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구나 하면서 그런 아들을 고맙게 생각했다.

며칠 전 아들의 불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내용을 이제 말하려고 한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생각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이것으로 오랜 동안 논쟁을 벌렸지만 좁히기 힘든 면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근간으로 나는 지금껏 일본을 무시하고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아들의 말인 즉 그들이 나에게 무슨 해 되는 일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기절할 일이다. 장시간 언성을 높이기도 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바로 개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나 할까? 나에게 직접적으로 관계가 되지 않는 것은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역시 성인과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통 할 수 없는 견해 차이를 보였다.

더 이야기 하며 아들과 마음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열심히 이야기하며 힘차게 걸을 것이다.

사랑한다. 아들아

 

<! 아들아>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아들이 하는 말인 즉 아버지는 사람들을 대면 할 때 직업 외모 등으로 먼저 판단하고 대하며 좋고 나쁨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진지한 얘기를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점심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활기차게 순례길을 걸을 수 있었다.

혼자 생각으로 걸으면서 아들아 고맙다. 그리고 대견하구나.

이제부터는 아들을 믿고 성인 된 아들로 대해 주어야 하겠다.

아들과 함께 순례길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순례길에서 보는 해돋이
성당의 모습

 

성당의 모습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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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일 화요일 제15일째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청원>

<기상> 5시 35분

<출발> 오전 7시

<도착> 오후 2시 5분

<걸린시간> 7시간 5분

<출발----도착 >

Boadilla del Camino --------Carrion de los Cortes 25km

<숙소>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Santa clara 2인 1실 숙소 44유로

<날씨>

아침에는 흐린 듯 하지만 쌀쌀 하였다

오전이 지나면서 햇볕이 강하지만 기온은 역시 낮았다

 

<순례길 풍광>

숙소의 마을길은 아스팔트 길이였고, 물길 따라 걸어간다.

물길이 좁기는 하지만 물이 꽉 차서 흐르는 강물 같기도 하다.

냇물이라고 하기에는 물이 많이 흐른다.

물이 흐르는 모양대로 물길 따라 가는 길이다. 유유히 흐르는 물 위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온갖 새들이 아침을 노래한다. 우리를 축복해 주는 노래를 한다. 그 시간 그리고 그곳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풍광이다.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원히 이 길을 잊지 못 하리라. 4km 이후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옆에 만들어진 2m 정도 폭의 순례길은 흙길로 이루어져 있어서 걷기에 너무 아름답고 편하고 좋았다. 어떤 수식어를 나열하더라도 표현에는 한계를 느낀다.

이어지는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오늘의 순례길은 지루하다면 지루하지만 많은 생각과 번뇌로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이다

막판에 carrion까지 18km의 이 길은 그야말로 대평원을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길이다

어느 때는 무염의 상태로 발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무아의 상태로 그냥 발만 앞으로 옮겨 놓는 상태이기도 하였다. 거기 표지석에 따라 1km 1km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의 순례길은 2단계 이틀째의 길이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발바닥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걷는 중간에 테이핑 하여 그런대로 참을 수 있는 상태이기에 어그적 어그적 절뚝 절뚝 걸을 수 있었으나 carrion 숙소 도착 즈음에는 고통이 극에 달할 정도였다.

 

<오늘의 묵상> 겸손

겸손은 감사를 전제로 한다

교만을 버려야 겸손에 이른다.

겸손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나는 겸손 하였던가?

나 자신을 돌아본다.

겸손 하려고 했지만 정말로 겸손 했던가?

주위에서는 나의 겸손 하려고 했던 자세를 어떻게 보았을까?

겸손은 타인에 의해 정의 되고 타인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기준이기도 하다.

물론 나 자신에게 겸손도 필요하지만 타인에게 대해 나를 낮추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실천하기가 더욱 어렵다

순례길에서 고통을 극복하면서 나를 낮추는 자세를 공부하고 있다

나는 겸손 하련다.

순례길에서 배운 겸손의 미덕을 세상에서 실천할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 하다

“괜찮아 잘 될 꺼야.” 하느님이 계시기에 주님을 따르는 자세로 나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의 미덕을 실천할 것이다

겸손! 겸손! 이것은 순례길에서 배우고 익힌 실천 덕목 제1호로 간직 할 것이다.

바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순례길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도하는 제목이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표현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주제> 감사

70평생 살아오면서 이번 순례길에서 처럼 감사의 뜻을 입만 열 때 마다 표현한 적은 없었다. 순례길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감사의 뜻을 정리해야 하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게 된 것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신체적인 이상 없이 오늘까지 온 것을 감사한다.

특히 아들과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며 더구나 오늘 아침에는 강가에 펼쳐지는 풍광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끊임없이 바친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와 함께 갈대숲에 비쳐지는 해돋이

붉은 햇빛 환상적인 풍광을 주심에 감사한다.

제가 볼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한다.

곧게 뻗은 아름다운 길이며 합창하듯이 들려오는 저 새소리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주님이 주신 자연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를 감사로 하니 하루 중에 감사드려야 하는 일들이 넘친다.

아들이 어느 날보다도 발의 아픔을 잘 이기고 나보다 앞서 잘 걷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움을 느끼지 못함에도 감사한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고 하면 감사의 탄성뿐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중간에 발목에 통증을 이야기 하니 “왜 아침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나쁜 감정은 아니다. 내 발목에 테이핑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고맙다. 그리고 내일은 짐을 택배로 보내자고 한다.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어쩐지 짐을 보내고 맨몸으로 걷는 것은 나의 마음으로는 순례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며 내 마음이 용납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워도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또한 순례길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어제 저녁 만찬에서는 벨기에, 시애틀, 호주에서 온 순례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오늘 걸으면서 아들에게 “부럽다.”고 했더니 무엇이 부러우세요?

외국인들과 영어 대화를 자유롭게 하는 네가 부럽다고 했더니 “아니요 버벅거리는데요.”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잘 하고 있던데”

이번 순례길에서 아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저 아버지의 눈으로는 늘 부족하기 짝이 없었던 아들이었는데 이번 순례길에 함께 와서 아들이 처신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능력 있는 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아들의 능력을 믿기로 했다.

오늘도 걸으면서 다리에 통증이 있음에도 잘 걷고 있었다.

고통을 참는 모습 또한 대견하다.

내가 만일 회사를 운영하는 ceo 라면 직원을 뽑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외국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필증은 회사나 공무원 채용 시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한다고 하니 우리도 참고 하면 어떨까 생각 해 본다.

아들의 장점 찾아서 칭찬해 주는 자세로 아들을 대할 것을 오늘 나는 마음 가진다. 아들과 함께 순례길 걷기를 잘 했구나하고 생각하니 하루 가 즐겁다.

순례길이 행복하다.

순례길을 아들과 함께 하는 아버지로써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선물임을 마음에 새긴다.

숙소 때문에 나 스스로 마음의 갈등을 빚고 있었다.

고통을 감수하며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순례길이 아닌가?

잠자리를 편하게 자기 위해서 예산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절약하여 내가 하고 있는 진흙 쿠키 먹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 더 났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건강을 극히 염려 한다. 이점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2인실을 44 유로 지출하면서 더 마음이 쓰인다.

아들과 의논하여보니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편안하게 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건강을 지키셔야 합니다. 완주 해야지요 몸에 이상이 와서 중도에 포기 할 수는 없잖아요? 아들이 현명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30유로( 1인당 15유로)를 max로 해서 숙소를 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현명한 기준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연령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얼마나 졸렸으면 사진 촬영하며 자고 있을까!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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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일 월요일 제14일째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 5시05분

<출발>오전 6시23분

<도착>오후 2시10분

<걸린시간> 7시간47분

<출발----도착>

hontanas---- Boadilla del Camino: 26km

<날씨>

서쪽 하늘에 둥근 달이 둥실 떠 있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하다

어둠을 뚫고 걷고 있는데 몹시 춥다 손이 시리고 귀가 아리다.

길에는 서리가 하얗다

아마도 섭씨 0도는 되는 듯하다 낮이 되니 햇볕이 따갑다. 정말로 맑은 날씨다

<숙소> Alb En el Camino Hotel

2인실 45유로 모처럼 시기에 깨끗한 곳을 찾았다

<3단계의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는 3단계로 구분하고자 한다.

1단계는

시작 일로부터 12일 13일 째 생장에서 burgos까지

기대 반 설레임 반 순례길을 출발하며 웃고 즐기고, 사귀고 만나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적응해 가는 첫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두고 온 조국도 가족도 이웃도 생각 밖으로 보내며 순례길을 적응해간다.

대체로 많은 사람들의 공통점은 왜 이 길을 걸을까?

순례길을 걸으면 나에게 어떻게 무슨 도움이 될까?

알베르게는 어떻게 찾고 어떤 수준으로 할까?

식사 걷는 속도 잠 등등 기준도 정하고 적응해가는 단계이다

일명 또 다른 사람은 Birth(탄생)단계라고도 한다.

1단계 순례길을 마치면서 신기하게도 며칠을 함께 걷던 박요한 신부님과 헤어지고 로꼬 일본 사람도 헤어진다.

1단계 길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2 단계를 예고하는 일들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신비의 길이요. 축복의 길이며 신앙인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이끄는 길이기도 하다.

2단계는

Burgos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새로운 만남, 외로움. 고뇌

무슨 소리고 나 자신을 깊이 생각하며 걷는 단계이다

길 자체가 평탄하고 지루하다면 지루하고 높낮이도 거의 없지만 힘든 단계이다.

그리고 거리도 30km 정도의 긴 코스를 걸어야 한다.

그래서 일컫기를 Death 죽음의 코스라고 칭하기도 한다.

3단계는

Rebirth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재탄생의 길이다.

희망이 있고 환희에 순간을 맛보게 된다. 활기차고 감사하고 축복의 길이 된다.

Sarria에서 산티아고 Santiago 즉 목적지까지 다

<오늘의 묵상> 금문교와 레드우드(Red Wood)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면서 나의 신앙생활을 반성 한다.

신앙생활을 반성할 때마다 매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금문교에 얽힌 이야기를 생각하게 된다

미국 샌프란치스코의 금문교 이야기다.

본래 금문교를 만들 때 레드우드(Red wood)라는 2천 년 된 나무의 뿌리에서 지혜를 얻어 설계되었다고 한다.

이 나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특성이 있다.

첫째, 다른 나무보다 땅 속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다.

둘째, 잔뿌리가 무척 많으며, 그것이 자갈과 박토를 피해 꼬불꼬불한 형태로 물이 있는 먼 곳까지 뻗어나가 물을 공급해 준다.

셋째, 뿌리가 큰 바위를 감고 있어서 폭풍이 불어 나무가 흔들릴 때도 반석을 휘감은 뿌리 때문에 나무가 쓰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문교를 시공한 사람 역시 레드우드 나무처럼 반석이 나올 때까지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위에 교각의 지주를 세우고 서로를 연결하여 건설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어떠한 폭풍과 지진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오늘까지 안전하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런 점이다

근본 바탕이 흔들리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사랑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베풀며 사는 신앙생활을 지향하고 있다.

특히 천주교 신자로서 더욱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지만 흔들릴 때 나는 레드우드 정신을 떠 올리곤 한다. 더욱이 순례길에서 나의 신앙을 묵상하면서 더욱 새롭게 느끼게 된다.

<오늘의 주제 1> 성당의 종소리

순례길에서 듣는 성당의 종소리는 축복의 종소리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기도와 묵상으로 이어지기를 지원해 주는 기도의 종소리다. 순례길은 성당을 이어주는 길이기에 축복의 종소리와 늘 함께 한다.

매시마다 그리고 매시 30분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덕분에 순례길에서 기도를 게을리 하지 않게 된다.

성체조배를 정성껏 할 수 있도록 순례자들을 이끌어 준다.

성당종소리를 들으며 다시 한 번 주님의 은총에 감사한다.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순례길을 걸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허락 하여 주심에 감사한다.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깨닫게 된다. 아침에 숙소를 출발하면서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로 나의 순례길에 “주님을 초대 합니다” 하고 초대의 기도를 드린다.

마을 마다 성당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에서 듣게 되는 성당의 종소리는 지금 걷는 순례길과 앞으로 걸어갈 순례길에서 나의 신앙적인 다짐을 더욱 굳게 하며 신앙생활의 새로운 활력을 재 다짐하게 된다.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해서 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면 오늘도 무사히 순례길을 마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심에 감사하며 오늘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둘레길에 재충전을 기원하기도 한다.

잠자기 전에 들려오는 성당의 종소리는 자면서도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게 된다.

감사의 종소리로 오늘을 마치게 된다.

순례길에서의 성당의 종소리는 나의 순례길의 시작이며 끝이다

순례길의 성당의 종소리는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표현되길 기도 하는 나의 마음’을 알려 주는 의미의 종소리이다.

<순례길의 풍광>

숙소에서 어둠을 손전등에 의지하며 마을을 나오자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우리를 보내는 종소리( 6시 30분)인 듯 내 마음은 가벼워진다. 그리고 주위가 어두운 아주 이른 아침인데도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새소리는 정말로 아름답고 정겹고 감미롭기까지 하다. 우리를 축복해 준다.

많은 새들이 여기저기서 노래를 하듯 아름다운 소리로 지저귀니 그 소리는 글로 표현하는 데 한계를 느낀다. 정말 맑고 고운 새소리는 순례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아름답고 정겨운 소리다. 평화롭고 운치 넘치는 풍광이다

많은 새들이 어두운 새벽부터 우리가 떠나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듯 축복해주는 듯 큰소리로 지저귄다.

아무튼 천국이 따로 없는 듯하다.

특히 넓은 평원의 종달새 소리는 초등학교 시절에 들어보고 오랜만에 듣는 정겨운 소리다. 맑은 공기, 아름다운 경치,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기에 종달새를 볼 수 있다. 부럽다. 숙소로부터 긴 길을 오솔길, 꼬불꼬불 시골길을 걷는다. 걷다가 긴 아스팔트 길로 이어진다.

지루하기도 하고 다리에 무리가 가는 길이다. 2km 정도 걸으니 첫 마을이 나오고, 그 후 흙길 자갈길로 이어진다. 긴 오르막 다음에는 평원, 다시 내려와서 들꽃 평원의 흙길을 따라 목적지에 도달하는 한다.

마을로 부터 멀리까지 나와서 cafe 소개 전단지를 돌리는 아주머니가 친절히 우리를 맞는다. 그 곳으로 찾아가서 밥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힘이 생긴다. 오늘 순례길에서 한국인 남녀를 만났다. 15일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특히 독일 프랑스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오늘의 주제 2> 발

70년 동안 나의 몸을 지탱해 준 발에게 오늘 따라 고마움을 느낀다.

특히 순례길에서 다른 몸의 어느 기관 보다 더 중요하다.

발을 너무 혹사 시키는 듯하여 미안하다.

인간의 몸은 유기체다. 어느 한 부분 중요하지 않은 기관이 없다. 그런데 순례길에서는 발의 고마움을 더욱 느끼게 된다. 숙소에 들어오면 무엇보다도 발을 어루만지며 고마워하며 맛사지를 하곤 한다.

몸의 다른 기관도 마찬가지겠지만 발에 고장이 나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발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해줘야 어렵게 택한 산티아고 순례길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다. 발이 순레길의 관건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 하는 날까지 무탈하게 지탱 해 주기를 기도한다.

<발을 잘 관리하는 요령>

순례길에서 발을 잘 관리하는 요령을 나 나름대로 정리하여 보았다

1. 신발에 신경을 쓴다.

가볍고 편안하고 발이 끼지 않는 신발

2. 출발하기 전 바셀린 크림을 충분히 바른다.

3. 면으로 된 발가락 양말을 신고 그 위에 면 등산 양말을 신는다.

4. 걸으면서 2-3 시간마다 한 번씩 양말을 벗고 바람을 쐰다.

이때 마사지도 함께 하면 좋다.

5. 그날의 걷기가 끝나 숙소에 돌아오면 찬물로 찜질을 한다. 근육도 풀어준다

6 .샤워 후 맨소래담으로 충분히 마사지 한다.

(발목, 종아리, 무릎)

이렇게 하면 발에 물집 또 생기지 않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보다는 덜 아프다고 한다. 그래도 오전 한 두 시간 이후 고통을 호소하며 걷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 참고 견디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고통스러운 걸음으로 나를 앞세우려 한다.

내가 뒤에 가면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 아버지를 보호하며 걷고자 하는 아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이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해야 할 몫이다.

그래도 마음의 고리를 이어서 보호하려는 아들의 마음이 감동으로 와 닿는다.

“나를 의식하지 말고 사람들을 사귀고 만남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 어떠냐?

타인들과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떠냐?”고 하면 아들의 말은 이미 아버지와 같이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 먹었을 때부터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갖는 것은 접어두기로 했다는 것이다.

고맙지만 내가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여러 차례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아들의 말은 항상 똑같다.

오늘과 같은 현상이다. 그래서 짐이라는 부담은 접어두기로 하고 아들과 멋진 추억을 쌓는 쪽으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고자 한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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