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기로! 아이가 독서광이 되었어요”(29)
-책 읽어주는 부모, 책 사랑하는 아이: 아자! 가가꾸소 실천기-
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이렇게 둘이 걸으니 좋아요
아윤이 외할아버지가 살고 계신 곳은 전라남도 구례의 상사마을입니다.
화엄사 입구, 지리산 자락의 아늑한 마을에 자리한 아름다운 나무집 옆으로
지리산 둘레길이 흐르듯 지나갑니다.
주말이나 휴일이면
배낭을 메고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여행객들이 잠시 머물다 가는 그 집은,
데크에 앉으면 새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소 울음소리와
경운기 소리가 정겹게 어우러지는 진짜 ‘시골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곳은 아윤이가 서울에서 KTX를 타고 자주 놀러 오는, 마음이 푸근해지는 제2의 집이기도 합니다.
어느 해 가을, 햇볕이 유난히 따사롭던 날.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걸었습니다.
자연을 관찰하고, 예쁜 꽃을 바라보며 뛰어놀기도 했고, 쉼터에 앉아 수목장 이야기를 나누며 한참 동안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모처럼 오랜 시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고, 대화를 나누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우리가 걷던 길은 외할아버지 집에서 꽤 먼 거리였습니다.
동생에게는 제법 벅찬 길이기도 해서, 결국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차로 데리러 와주시길 부탁드렸지요.
그런데 그때 아윤이는 말합니다.
“저는 외할아버지랑 같이 걸어서 집에 가고 싶어요.”
외할아버지는 힘들었지만, 아윤이의 말에 기꺼이 걷기로 했습니다.
산을 내려와 저수지 밑으로 돌아, 삼백 년 된 고택 ‘쌍산재’ 앞을 지나 마을 가운데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아마도 4~5km는 족히 되었던 길입니다.
걷는 중, 외할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아윤아, 왜 굳이 외할아버지랑 걸어서 가자고 한 거야? 힘들지 않아?”
그러자 아윤이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외할아버지랑 둘이 이야기하며 걸으니까 좋아요.
좋아하는 외할아버지랑 이렇게 걷지 않으면 언제 또 걸어요?
이렇게 둘이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아요.
외할아버지는 저랑 같이 걷는 거 싫으세요?”
그 말을 들은 외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아니~ 좋지, 싫기는…”
순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아윤이가 이렇게 어른스럽고 따뜻한 말을 하다니, 그저 대견하고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저수지가 나타났습니다.
아윤이가 물었습니다.
“외할아버지, 저수지는 왜 있는 거예요?”
“응, 저수지는 농사짓는 데 쓰려고 물을 모아두는 곳이란다.
비가 안 올 때 그 물로 논밭에 물을 주는 거지.”
“아~ 알겠어요!”
조금 더 걸어가자
마을 입구에 있는 옛날 한옥, 쌍산재가 보였습니다.
우리는 잠시 멈춰 그 앞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쌍산재는 삼백 년이 넘은 고택이란다.
정원과 마당, 건물이 어우러져 정말 멋스럽고, 뒤뜰로 가는 대나무와 동백나무 숲길도 아름답기로 유명해 앞쪽에 있는 당몰샘이라는 샘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깨끗하고 몸에 좋은 물이 솟아난단다.”
당몰샘에서 바가지로 시원한 샘물을 떠 마시니, 땀이 스르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마을을 가로질러 걷던 중 또 물었습니다.
“다리 아프지 않니?”
“아니요, 걸을 만해요!”
그 어른스러운 대답에 또 한 번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만 걸어도 “다리 아파요!” 하며 주저앉았을 텐데, 오늘은 무려 4~5km를 아무 말 없이 외할아버지와 웃으며 함께 걸었으니 말이지요.
그날, 아윤이와 함께 걸으며 나눈 이야기들은 외할아버지의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친구처럼, 때로는 연인처럼 서로를 아끼고 그리워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건 외할아버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깊은 관계가 형성된 데에는 책 읽어주기라는 다정한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입니다.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티노 박사의 Tip!
책을 읽어주는 행위는 단순한 낭독이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고, 서로를 이해하고 연결하는 대화의 시작점입니다.
책을 함께 읽으며 생긴 친밀감은 산책길의 대화로, 놀이의 눈빛으로 삶의 작은 감동으로 이어집니다.
책을 읽어준다는 건 결국 아이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분명히 아이의 마음에도 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