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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18)

426일 화요일 제15일째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청원>

<기상> 5시 35분

<출발> 오전 7시

<도착> 오후 2시 5분

<걸린시간> 7시간 5분

<출발----도착 >

Boadilla del Camino --------Carrion de los Cortes 25km

<숙소>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Santa clara 2인 1실 숙소 44유로

<날씨>

아침에는 흐린 듯 하지만 쌀쌀 하였다

오전이 지나면서 햇볕이 강하지만 기온은 역시 낮았다

 

<순례길 풍광>

숙소의 마을길은 아스팔트 길이였고, 물길 따라 걸어간다.

물길이 좁기는 하지만 물이 꽉 차서 흐르는 강물 같기도 하다.

냇물이라고 하기에는 물이 많이 흐른다.

물이 흐르는 모양대로 물길 따라 가는 길이다. 유유히 흐르는 물 위에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피어오르는 물안개. 그리고 온갖 새들이 아침을 노래한다. 우리를 축복해 주는 노래를 한다. 그 시간 그리고 그곳 아니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풍광이다.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영원히 이 길을 잊지 못 하리라. 4km 이후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옆에 만들어진 2m 정도 폭의 순례길은 흙길로 이루어져 있어서 걷기에 너무 아름답고 편하고 좋았다. 어떤 수식어를 나열하더라도 표현에는 한계를 느낀다.

이어지는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오늘의 순례길은 지루하다면 지루하지만 많은 생각과 번뇌로 나를 찾을 수 있는 길이다

막판에 carrion까지 18km의 이 길은 그야말로 대평원을 오로지 앞만 보고 걷는 길이다

어느 때는 무염의 상태로 발걸음을 내딛기도 하고, 무아의 상태로 그냥 발만 앞으로 옮겨 놓는 상태이기도 하였다. 거기 표지석에 따라 1km 1km 줄어드는 숫자를 보는 걸로 위안을 삼는다.

오늘의 순례길은 2단계 이틀째의 길이다.

설상가상으로 나의 몸 상태가 엉망이었다. 오른쪽 발목과 왼쪽 발바닥에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의 통증으로 고통스럽다. 걷는 중간에 테이핑 하여 그런대로 참을 수 있는 상태이기에 어그적 어그적 절뚝 절뚝 걸을 수 있었으나 carrion 숙소 도착 즈음에는 고통이 극에 달할 정도였다.

 

<오늘의 묵상> 겸손

겸손은 감사를 전제로 한다

교만을 버려야 겸손에 이른다.

겸손은 나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동안 나는 겸손 하였던가?

나 자신을 돌아본다.

겸손 하려고 했지만 정말로 겸손 했던가?

주위에서는 나의 겸손 하려고 했던 자세를 어떻게 보았을까?

겸손은 타인에 의해 정의 되고 타인에 의해 판단되어지는 기준이기도 하다.

물론 나 자신에게 겸손도 필요하지만 타인에게 대해 나를 낮추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를 실천하기가 더욱 어렵다

순례길에서 고통을 극복하면서 나를 낮추는 자세를 공부하고 있다

나는 겸손 하련다.

순례길에서 배운 겸손의 미덕을 세상에서 실천할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 하다

“괜찮아 잘 될 꺼야.” 하느님이 계시기에 주님을 따르는 자세로 나를 내세우지 않고 겸손의 미덕을 실천할 것이다

겸손! 겸손! 이것은 순례길에서 배우고 익힌 실천 덕목 제1호로 간직 할 것이다.

바로 이를 실천하는 것이 순례길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기도하는 제목이다.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주님의 뜻이 표현되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주제> 감사

70평생 살아오면서 이번 순례길에서 처럼 감사의 뜻을 입만 열 때 마다 표현한 적은 없었다. 순례길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감사의 뜻을 정리해야 하겠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게 된 것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신체적인 이상 없이 오늘까지 온 것을 감사한다.

특히 아들과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며 더구나 오늘 아침에는 강가에 펼쳐지는 풍광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끊임없이 바친다.

강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 와 함께 갈대숲에 비쳐지는 해돋이

붉은 햇빛 환상적인 풍광을 주심에 감사한다.

제가 볼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하심에 감사한다.

곧게 뻗은 아름다운 길이며 합창하듯이 들려오는 저 새소리 어찌 글로 표현할 수 있을까?

주님이 주신 자연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주제를 감사로 하니 하루 중에 감사드려야 하는 일들이 넘친다.

아들이 어느 날보다도 발의 아픔을 잘 이기고 나보다 앞서 잘 걷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거움을 느끼지 못함에도 감사한다.

나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라고 하면 감사의 탄성뿐이라고 할 수 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중간에 발목에 통증을 이야기 하니 “왜 아침에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나쁜 감정은 아니다. 내 발목에 테이핑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고맙다. 그리고 내일은 짐을 택배로 보내자고 한다. 아버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어쩐지 짐을 보내고 맨몸으로 걷는 것은 나의 마음으로는 순례길의 마음가짐이 아니라고 혼자 생각하며 내 마음이 용납하지 않는다. 고통스러워도 짐을 지고 가는 것이 또한 순례길에 대한 나의 마음이다.

어제 저녁 만찬에서는 벨기에, 시애틀, 호주에서 온 순례자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오늘 걸으면서 아들에게 “부럽다.”고 했더니 무엇이 부러우세요?

외국인들과 영어 대화를 자유롭게 하는 네가 부럽다고 했더니 “아니요 버벅거리는데요.” 아니야 내가 보기에는 “잘 하고 있던데”

이번 순례길에서 아들을 재발견하게 된다.

그저 아버지의 눈으로는 늘 부족하기 짝이 없었던 아들이었는데 이번 순례길에 함께 와서 아들이 처신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능력 있는 아들을 보게 된 것이다.

이제는 아들의 능력을 믿기로 했다.

오늘도 걸으면서 다리에 통증이 있음에도 잘 걷고 있었다.

고통을 참는 모습 또한 대견하다.

내가 만일 회사를 운영하는 ceo 라면 직원을 뽑을 때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했더니 그러면 가짜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표명한다.

외국에서는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 필증은 회사나 공무원 채용 시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한다고 하니 우리도 참고 하면 어떨까 생각 해 본다.

아들의 장점 찾아서 칭찬해 주는 자세로 아들을 대할 것을 오늘 나는 마음 가진다. 아들과 함께 순례길 걷기를 잘 했구나하고 생각하니 하루 가 즐겁다.

순례길이 행복하다.

순례길을 아들과 함께 하는 아버지로써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긍정적인 선물임을 마음에 새긴다.

숙소 때문에 나 스스로 마음의 갈등을 빚고 있었다.

고통을 감수하며 나를 다시 들여다보는 순례길이 아닌가?

잠자리를 편하게 자기 위해서 예산을 써야 하는가 아니면 절약하여 내가 하고 있는 진흙 쿠키 먹는 아이들을 위해 쓰는 것이 더 났지 않은가?

그런데 나는 완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건강을 극히 염려 한다. 이점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2인실을 44 유로 지출하면서 더 마음이 쓰인다.

아들과 의논하여보니 아들이 말하기를 아버지가 편안하게 쉬세요.

연세도 있으신데….

건강을 지키셔야 합니다. 완주 해야지요 몸에 이상이 와서 중도에 포기 할 수는 없잖아요? 아들이 현명한 판단 기준을 제시한다. 30유로( 1인당 15유로)를 max로 해서 숙소를 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현명한 기준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연령을 생각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얼마나 졸렸으면 사진 촬영하며 자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