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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23)

51일 일요일 제20일째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시 20분

<출발>오전 6시 20분

<도착>오후 12시 30분

<걸린시간>6시간 10분

<출발-----------도착>

Leon----- San Martin: 26.5 km

<날씨>

-2도C를 예고 했으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매우 춥다.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리다. 쾌청한 날씨다. 햇볕은 맑고 따뜻하다

 

<숙소>알베르게 Alb Viera

vieira 마을 초입에 있다. 주인이 친절하고 음식이 끝내 준다고 한다. 조립식 건물이긴 하지만 깨끗하고 시설이 양호하다. 묵었다 가는 사람들의 평을 남기고 간 것을 읽어보니 매우 흡족하다.

점심에 렌탈콩 수프가 매우 맛이 좋았다. 나중에 이름을 안 사실이지만 벨기에에서 온 아가씨 Evita와 함께 점심을 했다. 저녁에는 야채와 콩 수프 닭도리탕 야채샐러드 스페인에 와서 처음 맛있는 음식으로 저녁을 포식했다. 저녁 식사 후 산티아고에 온 Bienvenido Sanchez, 벨기에 온 아가씨 Evita, 아들 그리고 나, 4명이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하였다.

Bienvenido Sanchez는 스페인어로 말하고 이를 받아 Evita가 영어로 전해주면 아들은 이를 받아 나에게 우리말로 이어준다. 내가 우리말로 하면 아들이 영어로 Evita에게 해주면 Evita가 이를 받아 스페인어로 Bienvenido Sanchez에게 전해주는 형태로 오랫동안 스페인의 문화 산티아고 순례길에 얽힌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산티아고 순례자의 정신은 단순히 먹고 자고 걷고의 반복이라고 한다. 바로 인생의 본질이다. 그런데 지금은 퇴색 되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게 여긴다고 한다. 사람들은 너무 복잡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한 번 산티아고를 다녀 간 사람들은 다시 단순한 삶을 그리워하기에 여기로 다시 찾게 된다는 것이다.

성당에 비치 된 방명록을 가끔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받았던 감동, 느낌을 기록해 놓았는데 각각 순례자들의 개인적인 느낌과 긍정적인 말들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요즘은 순례길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흥청대는 느낌을 받게 되어 조금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한다.

특히 이곳 San Martin 알베르게 주인 아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친절하고 숙소를 4인이 쓰는 방을 2인이 쓰라는 것이다. 숙박비도 2인기준으로 지불하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리고 순례길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서 맛있는 순서로 꼽으라면 이곳을 우선으로 꼽는다.

아주머니 이름은 에멜리안이다. 순례길을 안내하는 자리에서 이곳은 반드시 머무를 곳으로 추천한다.

좀처럼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지 않는데 이곳의 방명록에는 기록을 남겼다. 주인과 기념사진도 촬영하였다. 순례자를 행복하게 해 주는 알베르게이고, 그 숙소의 주인 에멜리안이다.

영원히 행복하세요

 

<순례길의 풍광>

오늘 우리들은 어제 하루 재충전을 했더니 몸이 홀가분하다

알베르게를 깜깜한 6시에 출발한다. 어제 저녁에 미리 꾸려 놓은 배낭을 주섬주섬챙기며 남들은 자고 있는데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나온다.

세수도 못하고 아침 식사는 가면서 먹기로 하고 걷기 시작한다. 아침 식사용으로 빵과 음료수를 배낭에 넣고 걸었다. leon 도시를 빠져 나오는데 만도 3- 40분에 소요되었다

새벽은 leon 시내는 조용하고 오가는 차나 사람도 거의 없다.

( 물론 외곽이라서 ) 한참 도시 중심가를 벗어 외곽 순례자 길 코스에 들어섰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순례자들이 거의 없었다.

앞에 한 사람, 뒤에 한 부부 정도 그 외는 보이지 않았다.

오늘은 차도를 따라 옆길에 나아있는 순례자의 길이다. 오리지널 순례자의 길이라고 한다. 우리는 오리지널 순례자의 길을 택했다.

앞에 가는 한국 부부의 모습에서 외로움과 애처로움을 느낀다.

남편은 앞만 한번 보고 줄기차게 걸어가고 부인은 힘들어 하면서 뒤에 따라 터덜터덜 걸어간다. 아주 멀리 차이가 난다. 뒤에 가는 부인은 불평을 털어 놓는다. 이런 모습도 순례길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중간 쯤 걸었을까 표지도 없이 갈림길이 나왔다.

우리는 멈춰서 어느 길로 갈 것인가. 고민 중이다. 옛날 같았으면 손바닥에 침을 밷어 딱 때려 침이 튀는 쪽으로 가련만 지금은 그렇게도 할 수 없다. 나이 탓이겠지. 여유가 없어서 그렇겠지. 아무튼 멈춰 서서 잠시 고민 중이다. 어느 곳으로 갈 것인가? 자전거 순례길을 가는 두 사람과 부인들도 주춤 주춤 한다. 그런데 차를 타고 이곳을 지나가던 스페인 중년 부인이 우리를 보고 차에서 내려서 순례길을 가르쳐 준다. 정겨운 장면이다. 스페인 사람은 모두 모두 순례자들을 반겨준다.

부엔 까미노! 알로! 하며 인사를 해 준다든가, 웃음으로 우리를 반기는 모습은 생활로 자리 잡았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 3>

아내에게 보내는 두 번째 편지

지난날에 크고 작은 나의 실수나 당신이 보기에 소홀함을 느끼게 한 점을 통회 합니다.

이제 얼마나 살까?

이제 당신에게 잘하면 얼마나 잘 하겠소만은 그래도 사는 날까지는 나의 모든 고집이나 욕심을 내려놓으리다.

당신 편에서 생각하고 당신을 우선해서 생각하며 행동할 것을 순례길을 통해서 다짐해 봅니다.

정말로 나라는 사람과 결혼해서 마음고생, 육체적 고생, 금전적 고생, 수도 없이 했겠지만 표현은 안하고 속으로 안으며 살아왔겠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가슴앓이를 했을까?

나만을 생각하고 나를 위해서 살아 왔음을 시인한답니다. 아들, 딸의 성장에도 나의 이런 삶의 방식이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한답니다. 이제 반성하며 당신에게 글을 씁니다.

당신에게 글을 쓰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순례길에서 반성을 하며 글로 씁니다. 글로 다 쓸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내 뜻을 전하는 바이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은 것은 분명하지요.

어떻게 지난날에 당신이 받은 고통과 어려움의 삶을 내가 다 보상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노력하며 내 삶보다는 당신의 행복한 삶을 돕는 일에 더욱더 열심히 하리다.

당신을 존경 한다고 하면서 존경하는 삶을 게을리 한 것도 또한 반성하오.

앞으로 우리 둘이는 서로 알콩 달콩은 서로의 성격 상 아니더라도 서로 이해하고 서로 아끼며 사랑하며 당신 없이는 못살아 하면서 살아갑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어느 수녀님에게

수녀님 안녕하세요?

순례길을 걸으면서 수녀님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어제 저녁에는 수녀님께서 보내주신 메일은 열어 몇 번이고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습니다. 수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저이기를 바랐습니다.

주님께서 하잘 것 없는 자에게 “동무”라고 하시면서 정겨운 표현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저는 그 표현에서 좀 더 열심히 기도하며 갈등 없는 신앙생활에 몰입하라는 주님께서 수녀님을 통해서 전해주시는 선물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본당에 계실 때 저의 신앙생활의 멘토로 수녀님과 좀 더 가까이 하고자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런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신앙적인 갈등의 해결해 주시는 듯 수녀님께서 주신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8가지 생각”이라고 하는 책은 정말로 저에게는 소중한 책으로 다가 왔습니다.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지금 아니 먼 훗날에도 나는 이 책을 소중히 생각하며 신앙생활을 하는데 그리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지침서로 삼겠습니다.

수녀님을 신앙생활에 멘토로 생각하며 살겠습니다.

얼마나 힘드세요. 보통 정도가 아니시기에 메일로 수녀님께서 그런 표현을 쓰시지 않으셨을텐데 …

하면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내 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대신 더 진하고 깊은 기도를 드리게 되는군요. “수도자의 길을 가시는 수녀님께서 흔들리지 않고 더욱 굳건히 주님 사업을 이룩하시는데 확실한 주님의 딸로 자리 매김 해 달라”고 기도 합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묵상 주제> 성인들의 삶

순교로 신앙의 꽃을 피운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며 걸었다

어떻게 성인들은 순교로 예수님의 현존하심을 증거 하셨을까?

오늘날은 피의 순교는 없더라도 백색 순교를 택하는 삶을 왜 나는 살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천주교 신자라면 서슴치 않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 사회 규범에 맞지 않는 일이 있을 때 일어서서 저항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사회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위해서 과감히 나를 버리고 그들을 위해서 일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용기와 결단이 부족한가?

그 순간이 지나가면 반성하고 후회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순례길에서 성인들의 삶을 묵상 하고 있다. 나는 왜 그런 삶을 못 살아가는가?

나는 왜 그런 삶을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지 못할까?

야고보 성인의 전도의 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나는 그런 삶을 일부라도 닮기 위해 여기 오지 않았던가?

이제 남은 나의 인생을 주님의 도구로 써 주시라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고통이 따를 때 그 고통을 이겨낼 수는 없을까?

자신이 없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노력하고 다짐하면서 기도하며 주님께 매달려 보련다.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주님의 뜻하신 바가 있어야 되지 않을까?

순례길에서 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의 다짐이 더 굳어지기를 기도한다.

 

<오늘의 글> 부부

부부란 무엇인가?

다만 남녀가 만나 함께 사는 것이 부부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것은 그냥 사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내가 없다면 부부라는 단어가 존재 할까?

우리말에서 서로 같이 있어야 하는 말이 있다. 남편이라는 말은 아내가 있어야 존재한다. 아내는 남편이 있어야 존재한다. 여기서 ‘있어야 한다.’는 말은 그저 존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부부라는 말에서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서로 간에 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그것은 두 사람이 그냥 사는 것이다. 그냥 사는 것은 부부가 아니다.

그냥 두 남녀가 만나서 사는 것은 부부가 아니고 동거인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동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니 동거하다 그냥 헤어지는 일명 이혼이다. 그래서 이혼율이 높은 것이 이러한 이유일 것이다. 각각의 단어에 존재하는 본분을 다하지 못함에서 오는 현상이다. 순례길을 걷는 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부부의 삶을 생각하게 된다.

아내를 존중한다는 나의 말에 어느 신부님께서 소중한 존재로 아내를 생각하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다. 물론 소중하게 생각한다. 소중하다는 것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없어서 못 견딜 정도, 없어서는 못 살 정도, 아끼고 아끼는 상태를 말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부의 관계는 삶의 가치를 상승 시켜 주는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 사제님은 하늘에서 맺어 놓은 부부의 관계를 인간이 끊을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듣는다. 부부들은 이러한 말씀을 깊이 새겨 부부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잘 지켜야 진정한 부부가 아닐까?

순례길에서 부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며 이에 대한 글을 쓰면서 아내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된다. 그 무엇보다도 순례길을 걸은 후 에는 아내에게 더욱 잘 해주고 더 많은 이해와 사랑을 표현하며 나보다는 아내를 더 생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로 기록 한다.

 

<수녀원에서의 소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신비로운 체험을 한다.

4월 29일은 재충전을 위해 쉬기로 했다. 고급 호텔에서 순례길의 고통스럽고 어려움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쉬면서 재충전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4월 30일은 알베르게에서 자고 다시 순례길을 가기로 했다. 싸고( 1인당 10유로와 세탁까지 책임)깨끗한 알베르게로 가느냐,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가느냐 망설이며 갈등 하였다.

10유로 하는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동안까지 갈등하였다. 그러나 도착해서 보니 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할 수 없이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가기로 하고 찾아갔다.

무척 붐볐다. 하지만 침대로 가 보니 시트는 깨끗하였다.

복도가 트인 공간을 막고 이층 침대 여섯개씩 놓여 있는 것이다.

대형 합숙소 군대 막사 같은 분위기였다. 전쟁 피난민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갈등했다. 마음이 심란했다. 아들은 순례자들은 이런 곳에서 자고 순례길을 걷는다고 한다.

나도 다 경험을 했다.

20일째 이런 곳 저런 곳에서 경험을 쌓아 온터라 문제 되지는 않았지만 하지만 오늘 내가 깨달은 것은 갈등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 하는 것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이기는 하지만 선택을 현명하게 빠르게 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는 달라지는 것이다. 망설이지 말고 일찍 선택하고 행동을 취했다면 이런 알베르게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안한다.

이 수도원의 알베르게에 묵고 있는 순례자들은 오늘은 무려 25개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일이 순례자들의 나라를 책임수녀님이 불러주시며 알려주신다.

오늘은 왠지 잠이 좀처럼 오지 않았다. 갈등을 긍정적으로 풀어 가려고 했다.

두 가지를 얻었다.

수도원에서 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만나기 힘든 기회였다.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이기에 이런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감사할 일이다

저녁 기도회에서 수녀님들이 기도하는 기도 모임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말 할 수 없는 감정이다. 나의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열기 같은 것을 느끼며 생전 처음 느끼는 감정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 옆에 침대에 멋진 스페인 청년과 만날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27일 동안 걸어서 leon에 왔다고 하는 것이다.

한국에 와 보고 싶다는 것이다. 서로 연락처를 주고 받으며 서로 교류 하자고 하였다. 이런 점은 내가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얻은 결과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의 갈등을 풀었다. 마음에 앙금은 사라졌다. 바로 이런 것과 같이 며칠 전에 묵상 주제가 현실로 다가오는 신비한 체험을 순례길에서 하게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 하루를 쉰 아들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걷는 모습도 가벼웠다. 알베르게가 있는 도심의 수녀원에서 순례길 코스를 찾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아들은 정식 코스로 가지 말고 도심을 빠져나가는 다른 길로 가자는 것이다.

나는 아들의 의견에 따라 가면서 어떻게 이토록 길을 잘 찾을 수 있을까?

그저 감탄만 하면서 따라가고 있다.

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시내 외각을 걸었다. 30분 후 바로 순례길 코스로 만나게 되었다.

나는 새삼 놀랐다.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것 같은 길을 찾다니….

“어떻게 찾을 수 있니?”

“나도 잘 몰라요. 그냥 왔어요.” 말하지만 대견하다.

어려서도 그랬지만 공간 지각력, 지역, 방향 감각이 뛰어났다.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아주 어렸을 때 서울 모래내 시장 부근의 친척 집에 아들을 데리고 갔다. 나올 때 방향감각을 잃었다.

어린 아들이 이쪽으로 가세요하고 안내하는 것이다.

틀림없었다. 늘 그랬다. 지형을 알고 방향을 찾는다. 넓은 주차 공간에서 차 있는 것을 찾는 놀라운 방향감각을 칭찬 해줬다.

순례길에서 길을 잃기 쉬운 곳에서는 늘 능력 발휘를 하였다. 알베르게나 순례자 안내소를 찾는다든지, 식당을 찾는 일은 아주 뛰어났다. 내 아들이지만 칭찬해 주고 싶다. 아버지인 나는 아들의 이러한 능력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