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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호준 신부님의 글입니다 "시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시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10월이 가네요.

10월은 우리들에게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달이다

10월에 시 한 편 읽지 않았다면

인생의 참 맛을 맛보지 못하였네요

삶의 의미를 음미하지 못했군요

하지만 이틀 남았어요

여기 아름다운 글을 올린다

 

영동 성당의 임호준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글을 소개한다

 

새로운 열정”, 가슴 설레는 주제로 함께 준비하고 나누었던 본당의 날이 끝났습니다. 월요일, 조금은 피곤하지만 그래도 한가한 마음으로 차 한 잔과 함께 시집을 보다가 한 편의 시에 머무릅니다.

 

가을의 소원 -안도현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가을 앞에서이렇게 있고 싶은 마음들을 공감하게 됩니다. 특히 마지막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이라는 부분에서는 숙연해집니다. 겨울을 앞둔 가을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이기도 하지만 떨어지는 낙엽의 용기처럼 어떤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계절인가 봅니다.

 

이번 본당의 날 특강 때 두 분의 신부님과 한 분의 목사님이 저희 공동체를 다녀가셨습니다. 강의 내용을 다시 되새겨 보면서 세 분께서 한 가지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 ()의 마음... 시인(詩人)의 마음... ()가 사라진 세상...

 

이 분들이 말씀하신 는 문학 형식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누구나 갖고 있는 시적 마음’ ‘시적 감수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라는 문학 작품을 읽거나 쓰거나 하는 일과 관계없이 시적 마음’ ‘시적 감수성이라는 것은 인간 누구나가 소유하고 있는 근원적 심성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삶이란 무엇인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이 참다운 삶이냐 하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심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죽은 시인의 사회처럼 아름다운 인성(人性)과 공동체성(共同體性)을 상실한 죽음의 문화 안에 살아간다는 말이고, 이런 의미에서의 '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그분들께서 말씀해 주셨다고 봅니다.

<녹색평론>의 편집자인 김종철 선생은 시인들의 언어의 배후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다운 삶의 핵심에 곧장 다가가는 시적 직관의 힘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근본이고 무엇이 허상인지를 대뜸 알아보는 이런 직관이 가능한 것은 시인의 마음이 세상의 온갖 다른 것을 포기하더라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궁극적인 핵심을 놓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예로 다음과 같은 마음들 말입니다.

 

미국 노동사에서 19세기는 그 조건이 참으로 열악하던 때였습니다. 기아 임금을 받던 그 무렵 보스턴 근교의 어떤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습니다. 당시는 노동조건의 열악함 때문에 대개가 임금투쟁이 파업의 이유였는데, 이번에는 임금 투쟁이 아닌 아주 특이한 색다른 이유로 파업이 단행되었고, 그 때문에 미국 노동 문화사에 중요하게 기록된 사건입니다. 무엇이냐 하면, 그때 공장의 마당에 한 그루 오래된 느릅나무가 있었는데 이것을 공장 증축의 이유로 기업주가 베어 버리려고 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노동자들은 밥만 해결해주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때 파업을 했던 노동자들 자신은 그들이 그 느릅나무를 지켜고 했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우리는 저 나무를 볼 때마다 우리들이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김종철 선생은 이런 노동자들의 말 속에 시적 마음이 담겨 있다고 했습니다. 보스턴 근처 노동자들이 대 탄압 속에서 관철시키고자 했던 저 정신적, 철학적 요구야말로 실제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면서 인간 생존에 불가결한 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시의 마음과 감수성이라는 것은 단지 문학적인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것에 더 가까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시적 사유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모든 생명을 하나로 보는 사고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시인들은 사람과 사물을 볼 때 그렇게 봅니다. 모두가 보는 것을 그들도 보지만 어쩌면 저렇게 볼 수도 있을까싶을 정도로 그들은 다르게 봅니다. 하나의 사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흔히 하는 말로 나와 그것의 관계가 아니라 나와 그대의 관계로 포착되어 있습니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생명의 세계의 깊이를 더듬어보고 그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 이것은 참으로 종교적인 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들은 모두 시인들이라고 했겠지요.

 

새로운 열정”, 이렇게 좋은 주제로 본당의 날을 함께 맞이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우리 광영가족의 소공동체 사목이 새로운 열정을 시적 감수성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기억하면서 놀라워하고 고마워합니다... 시로 시작했으니 또 시로 끝내고 싶습니다.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낼 수 있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