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토론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 이야기(12)

박보영 (교육학박사, 박보영토론학교교장)

교사로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힘의 근원

대립토론의 필요성에 관해서는 토론 전문가를 비롯한 경험 있는 교사들이 수차례 강조하여 언급한 바가 있기에 새삼 재언할 필요는 없겠고, 대신 짧은 경험이나마 내가 맡았던 학급 학생들에게 적용한 대립토론지도 과정을 예로 들면서 학생들의 변화된 모습과 도움이 되었던 점을 자유롭게 적어 보겠다.

 

육아휴직을 하고 3년 여 만에 5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수업에 대한 감도 많이 떨어졌고 불과 몇 년 사이 많은 변화를 보인 교실 속 분위기와 새로 바뀐 업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 꽤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특히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무엇인가 시원스레 충족되지 않은 갈증이 생겼는데 그것은 바로 교과 수업은 물론이고 학급회의 시간에 학생들의 의사소통 및 토론 능력이 부족하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시스템이나 교육 환경은 훨씬 발전했는데 오히려 학생들이 지닌 사고의 깊이나 창의성, 논리적 비판력 등이 예전 제자들에 비해 많이 뒤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교과서에 나온 단순한 주제를 가지고도 상투적이고 관념화된 내용 몇 가지가 나오면 더 이상 나올 말도 없고, 그나마 독서력이 좀 뒷받침 된 한 두 명의 아이에게 의존하여 무임승차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토론이라는 말 앞에 여러 가지 신종 어휘가 붙여져 만들어진 토론 기법들을 적용한 수업도 참관해보았지만 학생들의 사고력이나 자기주도적인 학습 능력 향상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좀 더 심도 있고 폭넓은 근거 자료를 준비하여 형식과 내용을 제대로 갖춘 토론 수업을 해보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팽팽했던 설전이 오고 갈 때의 긴장과 짜릿함, 활력 있는 토론 활동의 재미와 맛을 다시 느껴보고 싶은 갈증이 커져갔다.

고민 끝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떠오른 것은 바로 과거에 전임 교장선생님께 지도 받았던 대립토론이었다.

대립토론의 길잡이책을 비롯한 그 분이 쓰신 저서들을 다시 찾아서 읽는 동안, 책 제목에서 말해주듯이 학생들의 토론 지도를 단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알기 쉽고 효과적으로 설명한 지침서 역할로 이것만한 자료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물론이고 교직 경력이 오래 되었어도 토론에 부담을 느끼는 교사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평생 한글을 사용하며 살아 온 우리가 왜 논리적인 글쓰기나 토론을 못하겠는가? 이는 타고난 능력과 소질이 없어서라기보다 우리 세대 때에는 그런 훈련을 받아본 경험이나 배움의 기회를 제대로 갖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20여 년을 대립토론 프로그램을 개발적용하며 토론교육에 힘쓴 대립토론교육전문가 박보영 박사님을 비롯한 대립토론 보급을 위해 꾸준히 노력하신 선생님들 덕분에 요즘 학생들은 복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 반 학생들에게 선배들이 썼던 토론 발표 원고와 시나리오를 도움자료로 주었더니 진짜 이거 우리 학교 선배들이 했던 거 맞느냐며 놀라워했다. 너희들도 차근차근 배워서 여러 번 토론을 하다보면 이보다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며 토론 기법과 예절, 규칙, 태도 등에 대해 공부하였다.

그 당시 우리 학교가 관내 독서토론수업지정 시범학교였는데 대부분 학급이 PMI 기법 등을 적용한 부분토론 수업을 했지만 우리 반은 용기를 내어 단원정리형인 대립토론수업을 해보기로 결정하였다.

학생들과 토론 주제 잡기에 고민하다가 교과서 밖의 실제 우리 주변 문제를 다루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대기업 계열사 임원이 항공기 여승무원에게 손찌검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회적 물의와 파장을 일으켰던 이른바 포스코에너지 왕상무 사건에 착안하여 이를 토론 쟁점거리로 삼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국민 대다수 여론은 왕상무의 행실에 대한 비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었지만 일각에서는 네티즌들이 포털 사이트나 트위터 같은 SNS에 해당 임원의 사진은 물론 생년월일, 입사일, 승진일 등 개인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사항들을 무분별하게 폭로한 일이 지나치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왔었다. 네티즌들이 이른바 신상 털기와 조롱을 한 셈이다.

사실 우리 학교 학생들 대부분이 해당 회사와 관련된 자녀들이었기에 학부모와 외부 학교 교사들이 참석하는 수업의 논제로 다루기가 좀 민감한 부분이어서 처음엔 이대로 진행해도 좋을지(파장을 우려하는 선생님도 계셨음)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대립토론교육활동의 소재로 우리 가까이에서 실제 벌어지는 일들을 다뤄보는 시도도 괜찮겠다는 결론을 학생들과 함께 내렸다.

수업 공개가 있던 날 교실을 순회하던 교육재단 임원이 우리 반의 토론 내용을 관심 있게 지켜보다가 바빠서 나가셨는데, 토론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며 궁금해 하셨다는 말을 나중에 전해 들었다.

이처럼 대립토론수업을 할 때는 학생들과 논제 하나를 정하는 것부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고민해야 한다. 입장이 서로 비슷한 숫자로 양립할 수 있는 논제인가? 당시 뉴스를 본 국민이면 누구나 알 만한 인물이라 해도 논제 안에 실명을 거론하는 게 괜찮을까 등을 고민하며 결국 기업인이라는 말로 결정하는 과정, 논제와 관련한 법적 용어 공부, 당시 화두로 떠오른 유행어들도 조사해야 했다.

또한 사건의 전말과 관련된 기사 및 뉴스 보도 자료 수집, 여론 추이 살펴보기, 책과 잡지 참조, 설문지 작성, 전문가 조언 등을 샅샅이 찾아 읽고 자기 팀의 입장에서 입론, 반론, 최종발언 발표안을 정리하며 다듬으려면 최소한 1주일 이상이 걸린다. 다양한 자료 수집과 핵심 근거 확보, 찾아낸 정보를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고 재구성하는 창의적인 사고 과정, 팀원 간의 의견 조정과 협력, 치밀한 전략 짜기 등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공부이다. 토론을 하면서도 상대방이 주장하는 허점을 예리하게 찾아 반박하며 자신의 입장을 차분하게 말하는 과정에서 고도의 집중력과 논리적 비판 능력도 요구된다.

대립토론이 지나친 말싸움과 경쟁만을 조장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어설프게 토론 기법이나 기술만을 강조하여 짧은 시간 내에 결과를 보려는 경우에나 벌어질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바람직한 대립토론 문화를 위해 사전에 토론 예절 및 태도에 대한 공부를 제대로 받으면 그런 걱정은 별로 없다. 토론에서 상대방 팀을 적으로 보고 싸우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이나 방청객을 설득하기 위한 공통 목표를 가진 수단이며 보다 더 효과적인 토론을 해 나가는 데 필요한 협력자임을 학생들에게 수시로 인식시킨다.

토론 결과의 승패를 떠나 두 팀 모두에게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거라는 사회자의 토론 종결 시나리오에도 나타나듯이 대립토론이 토론자끼리의 경쟁만이 아닌 성숙한 토론 문화 및 소통을 익히며 조화롭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 좋은 토의를 이루어가는 과정임을 자연스레 인식하도록 독려한다.

학생들이 실제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입장을 열띠게 주장하고 반박하지만 토론이 끝나고 난 후에는 서로 수고했다고 악수하며 상대방이 잘 한 점과 고쳐야 할 점, 우리 팀에서 아쉬웠던 점,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토론주제와 관련한 생활 속 실천이나 다짐 등을 자유롭게 발표하거나 내면화하는 시간을 꼭 가진다.

토론자, 판정인, 사회자, 방청객 전체에 대하여 피드백을 위한 논평을 하면서 지도교사도 배움과 보람을 느낀다.

또한 학생들에게 그 날 토론에 대해 토론일기를 써 보게 한다.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토론자 자기점검표도 작성함으로써 토론 과정에 대한 자신의 최종 입장이나 의견, 소감 등을 토론일기 양식에 써 보도록 하는 것이다.

팀원끼리 협동과 배려가 부족한 팀은 아무리 똑똑하다는 학생이 소속되어 있다고 해도 그 팀이 승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팀의 승리를 위해 개인의 독주를 자제하고 상황에 따라 양보하는 성숙한 자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 공개수업 시작 직전까지 서로 자신의 근거자료가 더 낫다며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채 다투던 팀이 있었는데 결국 그 팀은 승리하지 못했다. 물론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은 아니다. 자기 팀의 일원이 토론자로 발표하는 순간에도 쉴 새 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대방의 질문과 주장 내용을 메모하거나 작전 타임 시간에 한 순간도 멍하니 있지 않고 전략을 짜는 모습까지 모두 판정단의 심사 점수에 반영이 된다. 작전 타임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 팀의 자료가 빈약하고 준비가 덜 되었다는 모습이기도 하다.

자료 찾는 과정에서도 전문가나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경우가 있는데 이 때 지켜야 할 예절도 익혀야 한다.

우리 반의 경우, 자기 팀에 유리한 근거 자료 확보를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전문 변호인의 이름을 찾아 전화로 연락한 일이 있었다. 담임인 내게 통화 녹음이 가능한 휴대폰을 빌려달라기에 사용 용도를 확인하지 않고 휴대폰을 주었다. 나중에야 해당 변호사와 통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위기를 보니 통화 상대방이 상당히 당황한 기색임을 알고 얼른 전화기를 넘겨받아 그 분께 정중하게 사과부터 드렸다. 사전에 양해를 구하지 않고 절차 없이 불쑥 전화를 한 것과 담임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라 학생들을 사전에 제대로 지도를 못한 점에 대해 말했다. 정황을 들어보신 변호사님께서 나중에는 오히려 바람직한 일이라며 우리 학생들에게 칭찬과 격려를 해 주시고 질문했던 내용까지 성심껏 답변해주셨다. 통화를 끝낸 다음 학생들에게 전문가 면담이나 통화 상담시에 필요한 절차와 예절에 관해 다시 한 번 지도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회성과 배려, 인성 교육이 이루어진다.

대립토론관련수업 협의회 때면 어김없이 거론되는 것이 대립토론수업은 토론자로 뽑힌 소수 몇 사람의 참여로만 이루어진다는 지적이다.

나는 이런 점을 보완하여 대립토론의 원칙과 근본 틀을 벗어나지 않은 범위 내에서 지도교사의 재량으로 토론자와 판정단(홀수로 조정)의 숫자를 늘리고 방청객까지 두어 학급의 모든 학생에게 고루 역할을 부여해 주었다.

방청객에게 토론 전의 입장을 거수로 알아본 다음 토론 후에 입장이 바뀐 학생에게 그 이유를 들어보는 시간을 가지니 누구 한 사람도 방관하거나 놀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최종 발언 시간 전에 방청객의 질문 시간을 넣어 그에 대한 답변 내용까지 심사 관점에 포함시켰다.

토론 활동 과정에 집중력을 발휘하여 양측의 주장을 냉정하게 비교하고 판단하며 왜 토론에서 이겼는지 졌는지의 이유도 설명하면서 소감 발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방청객의 역할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 학생들이 많다. , 토론자이든 참관인이든 모두가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 반에 토론에서 어떤 역할도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부담을 가진 학생이 있었는데 그 학생에게는 토론 절차를 달력형 게시물로 만들어 토론이 진행되는 사이마다 순서 판을 넘기게 하는 역할을 주었더니 재미와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참여한 사례도 있다.

바쁜 업무와 다양한 교육활동들 속에서 대립토론을 자주 하지 못했고, 객관적으로 수치화된 근거 자료를 제시하여 그 효과를 주장할 수 없음이 안타까우나 대립토론을 통해서 총체적 언어능력, 설득력, 감정 조절 능력,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 창의 인성 함양까지 학생들에게 끼친 좋은 영향력은 분명히 있다고 느낀다.

적어도 4학년 이상부터는 가능한 한 자주 대립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교사가 충분한 재량권을 갖고 토론 수업에 충실할 수 있는 시간적 여건과 풍토가 조성되는 학교 경영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내 반의 경우, 학년말 문집에 학생들이 1년 중 기억에 남을 사건으로 단연 손꼽은 것은 역시 토론수업을 한 경험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성장의 기쁨과 자긍심을 느껴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담임인 나도 보람을 느꼈다.

학년 초 학생 지도에 한계를 느끼고 막막했던 심정이 토론수업 적용을 통해 조금씩 해소되면서 교사로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힘의 근원은 오로지 학생교육만을 생각하며 오늘도 대립토론교육과 후진양성에 힘쓰시는 박보영 전임 교장선생님 덕분이라 믿기에 이 지면을 통해 선생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아울러 현직 교사이며 조만간 초등학교 학부모가 될 입장에서 나중에 내 아이가 대립토론 공부를 접하면 좋겠다는 소망도 가져본다.

(광양제철남초 교사 김문필)

----------------

무엇이 달라졌나?

-일련의 과정 속에서 사회성과 배려, 인성 교육이 이루어진다.

-대립토론을 통해서 총체적 언어능력, 설득력, 감정 조절 능력,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능력, 창의 인성 함양까지 학생들에게 끼친 좋은 영향력을 느낀다.

-내 반의 경우, 학년말 문집에 학생들이 1년 중 기억에 남을 사건으로 단연 손꼽은 것은 역시 토론수업을 한 경험이었다. 학생들 스스로 성장의 기쁨과 자긍심을 느껴 뿌듯해 하는 모습을 보면서 담임인 나도 보람을 느꼈다.

-학년 초 학생 지도에 한계를 느끼고 막막했던 심정이 토론수업 적용을 통해 조금씩 해소되면서 교사로서 자신감을 회복하게 된 힘의 근원이 되었다.

 

 

Posted by 토론은 게임이다. 바로 대립토론! 笑山 박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