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표를 어느 방향으로......?
서울에서 대립토론Debating강의가 있어서 서울을 다녀오는 길이다. 마음먹고 기차를 이용하기로 하였다.
모처럼 하는 기차여행이라서 다소 기분이 “업” 되기도 하였고,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도 설계하면서 차창 밖의 풍경을 흘려보내며 달리는 기차에 나의 몸을 맡기고, 시간에 맡기고, 내 마음 속의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이런 일 저런 일, 이사람 저사람, 이말 저말, 이 것 저 것 등등 나의 머릿속은 회오리바람이 되어 스쳐 가는 세상일들로 가득 차 있었지만 달려가는 열차와 시간에 모든 것을 맡겨 버렸다.
2시간이 지나가면서 텅 빈 마음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녹색들판 곳곳에 나의 시선을 멈추고 또다시 얼마나 지났는지......
핸드폰을 꺼내어 「맥주한잔+클래식음악=최고의 기분, 최고의 여행, 그리고 영광스런 상도 받고, 다만 나 혼자 인 것이 아쉽군^^^^」서울에 있는 딸과 광양에 있는 안해(아내)에게 동시에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두 곳에서 답신이 들어왔다.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고 내용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다시 「집을 향해 달리는 기차는 삼례역을 지나지만 딸 ***와는 멀어지네」어디쯤 잘 가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동시에 광양과 서울로 보냈다.
딸에게서 날아온 문자「저랑 멀어지니 좋으신가봐 ???헉헉ㅠㅠ」
???은 의문점이고 헉헉은 당황, ㅠㅠ은 슬프고 기분 언잖음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나의 답신은 「천부당 만부당......」.
그러나 “서울과 광양의 중간에 있는 나”는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이와 같은 경우는 우리생활에 늘 존재하고 있다. 순간순간마다 우리는 자신을 컨트롤하고, 자신이 선택하고 행동하여야 한다.
가령 선과 악을 생각해보자 나를 중심으로 양쪽에 거리를 가지고 선과 악의 끝점이 있다고 (선................▼.......㉯.......................▼....악) 생각할 수 있다. 선과 악의 끝점까지의 길이를 달리 조정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어렵고 힘들기는 하지만 좌표(▼)가 중심에 있는 나를 향해 얼마만큼 거리로 만드는가는 나의 의지와 선택 그리고 노력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평안함과 고통, 근면과 나태, 칭찬과 질책, 기쁨과 슬픔, 평화와 갈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생각 할 수 있다.
행복, 긍정, 평안함, 근면, 칭찬, 기쁨, 평화의 좌표를 나의 방향으로 향하도록 끌어들이고 불행, 부정, 고통, 나태, 질책, 슬픔, 갈등의 좌표를 나로부터 멀리 하도록 밀쳐 버리도록 끊임없는 노력과 정성을 쏟아야 할 것이다.
때로는 고통이 따르고 아픔이 생기기도 하지만 인내하여야한다.
작품을 통해서 고향과 향토와 조국에 깊숙이 그 영혼의 뿌리를 내린 독일의 시인 훨더린(Holderlin, Friedrich 1770~1843)은 “무슨 일이 일어나거든 그 모든 것이 너에게 축복이 되리라. 기쁨을 향해 돌아서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닥친 고통으로 인해 아픔이 따른다고 하더라도 인내하며 나의 마음을, 즉 좌표를 행복, 긍정, 평안함, 기쁨, 평화로 돌려야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선택하고 결정하여야 하며 행동으로 옮겨야한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길이다.
하지만 마음먹고 행동하기에 따라 좌표를 나에게 가까이하는 끝점은 사람마다 다르게 다가 오기도하고 멀리 하기도 한다.
우리 신앙인은 늘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주님을 닮는 생활로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할 때 고통은 사라지고 평안함과 기쁨이 우리 생활 속에 가득할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 “행복과 불행, 긍정과 부정, 평안함과 고통, 근면과 나태, 칭찬과 질책, 기쁨과 슬픔, 평화와 갈등”의 어느 좌표를 나에게로 가까이 할 것인가를 늘 생각하고 행동하여 주님 보시기에 좋은 나의 모습을 만들어 가자고 감히 제안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