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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공부하는 토론게임 (대립토론) /토론의 달인 세상을 이끈다

대립토론은 인성 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다.

대립토론은 인성 교육의 또 다른 이름이다.

 

 

축구, 핸드볼, 농구 등은 팀 경기이다. 축구경기를 통해서 리더십을 배우고 인내심을 배우며 특히 협동심을 습득하게 된다. 요즈음의 교육은 경쟁 인을 키운다고 할 수 있다. 옆의 학생보다 더 점수를 받아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기에 짝궁이 점수를 덜 받아야 내가 점수를 더 받을 수 있어 나의 등급이 올라간다. 그러니 이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없다. 이웃을 배려한다든지 도와준다는 행동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협동심이라는 단어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이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협동심을 키우고 서로 이웃을 배려하며 돕는 생활을 하도록 교육시켜야 할 것이다.

축구경기와 핸드볼 농구경기와 같은 운동경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축구, 농구 핸드볼과 같은 단체로 하는 운동경기를 통해서 리더십을 배우고 인내심을 배우며 특히 협동심을 습득하게 된다. 축구경기와 핸드볼 농구 등의 운동경기와 같다고 할 수 있는 대립토론을 통해서 협동심을 키우고 이웃을 배려하는 태도를 키우는 대립토론은 팀 게임이다. 대립 토론의 기본바탕은 듣기, 자신감을 키워주는 말로 하는 게임인 동시에 근거자료를 중심으로 자기의 주장을 펼치는 논리적이며 자신 있는 말하기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루에 거의 45%를 듣기에, 30%를 말하기에, 16%를 읽기에, 9%를 쓰기에 시간을 쓰고 있다고 한다.(전영우, 1997)

거의 반 정도로 듣기가 중심이 된 우리의 생활이 아닌가? 남의 말에 경청하기를 요구되는 사회에 살지만 과연 남의 말에 경청하고 있는가? 모두가 자기의 목소리가 더 커야하고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현대인에게는 대립토론은 꼭 필요한 생활 방식을 배우는 한 방법이다. 집단 상담시 상대방의 말을 고민을 들어주기만 해도 50%는 해결되어진다고 한다. 경청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대립토론을 통해서 남의 말을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공격 당하여 패배하게 된다. 대립토론에 익숙하게 되고 열중하게 되면 경청하는 자세가 길러진다.

흔히 대립토론은 찬반 두 팀이 서로 공박을 해야 함으로 이는 인성 교육 측면에서 좋지 않다는 비판 아닌 비판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다

다시 축구경기를 생각해 보자

 전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이었던 허정무 감독을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그 이유는 교육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본받을 점이 많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인물로 대립토론과 관련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축구선수였을 때 어떠했는가? 공격과 수비 양면에서 축구 경기에 몰두하고 몸을 사리지 않고 경기장을 누비던 세계적인 우수 선수 아니었던가? 진돗개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사력을 다해 상대 선수를 묶어 놓으며 수비에 철저했다. 상대팀 선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공에 대한 집착이 강할 뿐만 아니라 타고난 능력과 연습으로 준비된 기술을 발휘하면서 공을 차지하기 위해 또 공을 잡아 공격할 때면 골문을 향해 돌진하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어 팬들을 열광시켰던 것이 기억난다. 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혼자만 나서지 않고 자신의 팀과 협동하며 경기를 이끌어 갔다. 국가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서도 나보다는 선수들을, 나보다는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바른 축구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축구가 아닌 가정이나 사회에서는 얼마 전 모 방송에서 방영된 명사의 어머니프로그램에 소개된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현대판 효자로서 어머니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잉꼬부부로 그리고 손자들에게는 인자하고 함께 놀아주는 할아버지로서의 허정무감독을 나는 보아왔다.

사회적으로는 후배들을 챙겨주고 이웃을 배려하는 모습을 늘 접할 수 있다. 그리고 주위의 사람들은 허정무감독의 인품에 늘 고개 숙여진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잠시 생각해보자

허정무감독이 축구경기와 같은 과격하고 도전적인 운동을 했기 때문에 인성적인 측면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말 할 수 있겠는가? 오히려 축구라는 팀 경기를 통해서 인품이 바르고 선하고 남을 배려하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변화 되어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다. 축구를 통해서 심신의 단련과 바른 인품을 가질 수 있고 리더십을 키울 수 있었기에 사회에서 존경을 받는 지도자로 거듭나게 되었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래서 스포츠를 통해서 인성교육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대립토론도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자세로 변화하고 협동심이 키워진다고 경험을 바탕으로 확신할 수 있다. 인성 교육 측면에서 더욱 강조할 사항이다.

일상의 사물에서 가장 사람다운 사물이 젓가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서로 협력해야 일을 할 수 있는 젓가락이야말로 대립토론으로 키울 수 있는 협동심을 키우는 일과 일치하지 않는가?

여기에 관련된 매일경제 2014. 8. 2.의 "함돈균 문학평론가"의 글을 올린다.

 

[사물의 철학] 젓가락-둘이 있어야만 시작되는 `사람다움`

공자는 `사람다움``()`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은 단독자로서의 인간성을 뜻하는 말이 아니다. 글자 모양을 보면 `사람() ()`이 모여 ``을 이룬다. 공자는 `사람다움`을 두 사람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야 마땅한 윤리적 덕성으로 이해했다.

일상의 사물 중에 가장 `사람다운` 사물이 무엇일까. `젓가락`이 아닐까. 젓가락은 한 짝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물이다. 젓가락은 걷는 두 다리, 움직이는 두 팔 모양으로 작동한다. 젓가락질은 기우뚱하지만 절묘한 평형감으로 허공에서 엇갈림과 만남을 반복하면서 적절하고 정확하게 음식을 집어낸다. 젓가락질의 본질은 그것이 절대적 균형감의 소산이 아니라 한쪽만으로는 불구일 수밖에 없는 둘이 모여 만드는 `기우뚱한 균형감`이라는 데에 있다.

음악에서 `조화-화음`을 뜻하는 `하모니(harmony)`는 높이가 다른 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협업`이다. 화음이 시간적으로 진행되어 율동성을 갖게 되면 음악의 기본 구조인 `화성`이 된다. 같은 것이 모이는 게 아니라 다른 것이 모여 적절한 수준에서 결합할 수 있는 율동감과 타이밍을 찾을 때 `하모니`가 된다.

그렇다면 하모니를 위한 율동은 어떤 동선을 가질까. 다시 젓가락을 생각해 보자. 음식을 입으로 전달하는 도구로 숟가락과 포크와 젓가락이 있다. 숟가락은 음식물을 밑으로부터 퍼올린다. 포크는 날카로운 끝으로 찌른다. 젓가락은 양쪽 바깥에서 `감싸듯이` 집는다. 바깥에서 `감싸는` 동선으로 음식물에 다다른 양쪽 젓가락은 그때 `하나`가 되는데, 이때 젓가락의 모양새는 각각의 둘이 모여 정확히 `사람 인()` 자 모양이 된다.

어쩌면 `사람 둘 사이`에서 발생하는 `인간다움`이라는 공자의 `()`, 불균형한 둘이 시작할 수밖에 없고, 모여서 구실을 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사람() 형상을 하게 되는 `젓가락의 윤리`일 수도 있다. 생각해 보라. 단지 `손기술`이었다면야 어릴 때 젓가락질을 못한다고 우리의 아버지들이 아이들을 그렇게 혼을 내시기야 했겠는가.
2014.8.2. 매일경제에서
[함돈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