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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토론으로 인생을 바꾼 사람들이야기

Pfizer Korea 마케팅 팀 Product Manager 김미혜(서울대학교 졸업)가 말하는 대립토론

 

대립토론: 논리적인 쌈닭이 되는 법

  하루하루 제품의 경쟁상황이 변화하는 치열한 마케팅의 현장에서 쌈닭이 되어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우 많다. 제품의 전략적 방향성에 대한 큰 축의 결정 사항에서부터 작게는 영업부와의 커뮤니케이션 혹은 고객의 불만에 대한 리액션 계획 까지 모든 업무는 기본적으로 미팅을 통해 결정된다. 이 과정에는 내 의견에 대한 정확한 논리와, 상대의 전략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핵심 파악 능력이 요구된다. 이를 통해 나의 의견을 정확하게 피력하고 관철 시키는 일이 매일 반복 된다. 물론 팀 내 의견 수렴을 통해 가장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과정의 일환으로서 말이다.

이러한 과정을 스트레스로 여긴다면 마케터라는 직업을 결코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하게 대립하고 수 많은 시간 동안 팽팽히 의견이 평행선을 달리기도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내 제품이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고, 경쟁품보다 효율적으로 시장을 선점하며, 장기간의 경쟁우위를 점하게 되는 결과를 지켜보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한다.

   

  내가 이 짜릿함을 처음 느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의 일이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대립토론을 주제로 교내 특별활동 반이 구성되었다. 수업 한 주 전 특정 주제가 공유되고, 몇몇 친구들과 팀을 이루어 해당 주제에 대해 공부하고 자료를 리서치 하였다. 수업 전에 이미 찬성/반대 팀이 결정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상대편에서 어떤 주장을 펼칠지 예상하고 허를 찌르는 무기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돌이켜 보면 대학생들이 팀플(팀프로젝트의 준말)”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형태의 공부법이 매우 일반화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그 당시에는 초등학생들에게는 자발적으로 팀을 이루어 특정 주제에 대해 제한 없이 자료를 구하고, 자신들만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다소 생소한 방법의 공부법이었다. ‘방학생활이라는 노트 형태의 문제집 수준의 포트폴리오 정도가 정형화된 방법이었던 시대라고나 할까. 또한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 된 때가 아니라서, 주로 자료는 신문이나 책을 참고하였다는 점이 기억에 남는다. 심지어 가상 토론을 열어 각 팀의 주장을 예상하고 롤 플레이까지 해보았던 기억이 있다. 매우 자발적인 참여였고, 학습 의지였다.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의 결과로서 연말에는 제 1회 교내 대립토론 대회가 열렸다.

나를 비롯한 두 명의 친구들이 자존심을 건 대결에 합류하기 위하여 팀을 이루었다. 팀명은 지피지기, 시간이 흘러 추억해 보니 다소 식상하지만 대립토론의 핵심을 꿰뚫는 팀명 선택이었다고 자부한다. 주제는 청소년의 대중문화 따라 하기 현상에 대한 찬성/반대 의견을 피력하는 일이었다. 반대를 뽑고 싶었지만 찬성을 뽑게 되어 적지 않은 좌절을 했던 기억이 난다. 대회답게 시간제한도 생겨났다. 심사 의원석이 따로 마련되고 청중석도 마련되었다. 사실 자세한 토론 과정을 기억하기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연필을 꼭 쥔 두 손이 흥건해 질 만큼 열띤 토론이었던 것 같다. 3명으로 구성되었던 팀에서 각각의 주장 내용을 시나리오로 작성했는데 행여나 이 전략이 새어나갈까 소곤소곤 메모로 대화를 나눴던 기억도 남아있다.

우리 지피지기 팀이 1등으로 대회를 마쳤다. 광양제철남초등학교 제 1회 대립토론 대회의 영광스러운 1등 수상팀이 되었다. 짜릿했다.

 

  시간이 흘러 대학교 입학에서도 형태를 달리한 대립토론은 또 열렸다.

2006년도 서울대학교 논술고사의 주제는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였다. 여러 개의 예시문이 각각 그 나름의 행복해 대한 설명과 주장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예시문들을 근거로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행복의 개념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경험을 접목해야 했다. 제시문에 많이 의존하기 보다는 폭넓은 사고를 통해 본인의 성찰 내용을 논리적으로 밝혀야 했다. 토론 과정을 통해 단련해 온 논리적 사고력을 표현으로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장문의 글이 완성되었다. 운이 좋게도 그 해 합격할 수 있었지만, 사실 내가 쓴 글로 인해 합격을 한 것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대립 토론의 학습방식에 익숙했기 때문에, 일반 교과과정을 통해 배운 적 없는 형태와 주제의 과제로 2500자의 글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렇게 입학하게 된 대학교의 교육과정은 거의 모든 수업이 팀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되었다. 특히 해외로 교환학생을 간 기간 동안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과 팀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언어를 넘어 논리를 주고받는 경험은 훗날 다양한 환경을 접하게 될 나의 직업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값진 배움이 되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의 전선에서는, 대립 토론을 공부했던 나의 경험은 큰 전략적 무기가 되었다. 각종 스펙 쌓기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점,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돋보일 수 있는 무기가 필요했고, 그룹 토론 과정에서의 논리력과 전략적 사고력을 중점적으로 어필하고자 노력하였다. 사실 취업을 위해 누군가와 대립적 구도로 토론을 하고, 어떻게 이기는가가 중요한 싸움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모여 공부했던 그 마음가짐으로 차근차근 준비하고 역량을 쌓는 과정에서 내 스스로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었다.

오늘도 아침 10시부터 저녁 6시까지 빼곡한 미팅이 잡혀있는 스케쥴러 알람과 함께 나의 하루는 시작된다. 나의 의견을 피력하고, 누군가의 의견을 수렴하는 매일 매일의 이 과정이 나는 즐겁다. 내 의견이 채택되고, 발전되어 하나의 전략이 되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치열한 쌈닭이 된다. 쌈닭이라는 말이 단어에서 풍기는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성향과는 달리 매력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논리와 전략이 주 무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 위한 대립이 아닌 발전적인 결론 도출을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즐겁고 매력적이다. 초등학교 4학년, 1회 대립토론대회에서 1등 상장을 받던 그날처럼, 짜릿하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어린 시절, 피하고 싶고, 어려운 과목으로 치부할 수 있는대립토론을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배워 자연스럽게 익혔던 경험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지금은 기억을 더듬더듬 찾아야 할 오래된 초등학교의 기억들 중에서, 토론 수업 때 만큼은 장면 하나하나를 떠올릴 수 있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인 것 같다.

Pfizer Korea 마케팅 팀 Product Manager 김미혜(서울대학교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