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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山박보영 이야기/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16)

 

424일 일요일 제 14일차: 순례길 2단계

<묵주기도 빛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5시 20분

<출발>오전 6시13분

<도착>오후 2시05분

<걸린시간> 7시간52분

<출발---도착>

burgos------ hontanas : 31. 5 km

<숙소> Meso El Puntido

알베르게 2인 숙소 25유로

< 날씨>

아침에 흐리고 쌀쌀하다. 11시경 빗방울이 떨어지다가는 정오경에 해가 나기 시작한다. 오후 도착 이후 햇빛은 강하지만 매우 춥다

<순례길의 풍광>

도시를 벗어나 꼬불꼬불 길로 이어지더니 마을을 지나 긴 오르막길을 오른다.

그런 다음 내리막길이려니 하는 예상을 깨고 끝이 없는 듯한 넓은 평원,

하늘에는 종달새가 지저귀고 곳곳에 무리 지어 그 위력을 뽐내는 듯 돌아가는 풍력발전기의 바람개비는 풍광을 더욱 운치 있게 만든다.

설상가상으로 길은 진흙탕으로 엉망진창이다. 신발이 말이 아니다. 신발에 덕지덕지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 진흙은 힘든 길을 더 지치게 만든다.

다리를 더 아프게 자극한다.

그래서 이 길을 2단계 순례길로 죽음의 길이라고 칭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지평선을 향해 걸어도 걸어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맑은 하늘에 나즈막이 떠 있는 뭉게구름과 평원에 평화롭게 자라고 있는 녹색의 밀밭, 한 폭의 풍경화, 정말로 이곳이 아니면 보기 힘든 아름다운 풍광이다.

끝이 없어 보이던 넓고 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에 반가운 성당 종탑 위의 십자가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 얼마나 반가운가!

죽을힘을 다해가며 기진맥진 한 몸으로 다리를 질 질 끌다시피 하면서 걷는데 오늘의 목적지 마을이 있다는 표지가 바로 성당이었다.

마을이 마치 분화구 속에 있는 듯하여 나에게 가장 먼저 보이게 되는 것이 성당의 십자가였다.

분화구 같은 곳에 마을이 있다니 환희! 그 자체 드디어 오늘 목적지 Hontanas.

야호!

다 왔다 31. 5km

중간에서 우리는 깃발을 달고 달리는 자전거 가족을 만났다. 콜롬비아에서 왔다는 가족 4명이다.

아버지 엄마 이십 대, 십 대 두 딸이다. 자전거로 산티아고를 향해 패달을 밟는다. 순례길에서 진흙탕 길을 서로 밀고 당기면서 자전거로 달린다. 얼마나 힘들까? 나도 할 수 있을까?

잠시 이들이 무사히 마칠 수 있도록 응원을 보낸다.

진흙탕 길에서 서로 들어주고 묻은 흙을 닦는 작업을 하는 이들 가족에게 함께 사진 촬영을 하며 용기를 넣어 주었다

브라보 까미노!

<오늘의 주제 1> 산

순례길에 있는 산은 올라가야 한다.

인생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올라가야 성취를 맛볼 수 있다.

산이 있어 아름다운 풍광을 만든다.

산이 있어 오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인생길도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나아갈 때 열매를 본다

산은 우리에게 의지를 준다.

산은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인생길의 산은 도전하는 삶을 맛보게 한다.

굳세게 살아가자.

<오늘의 주제 2> 몫

순례길에서 나는 생각한다.

나의 몫은 무엇인가?

늘 삶에서 나의 몫을 생각한다.

800km의 순례길도 나의 몫이다

누가 걸어 주지 않는다.

내가 지고 가는 무게도 내가 감수해야 한다.

나는 나의 몫을 다하련다.

<오늘의 묵상> 아버지의 마음

순례길에서의 아버지의 마음은 평소와는 다르다.

서운해도 서운함을 표현할 수 없다.

아들의 힘든 모습을 보면서 도와 줄 수 없으니 더욱 안타깝다.

내가 앞서 가면 뒤에 오는 아들이 제대로 할 잘 걸어오는지?

아들을 앞세우고 가면 아들이 어우적, 어우적, 절룩, 절룩 걷는 모습에 가슴이 찡하다.

이러한 마음이 아들과 함께 걷는 순례길에서의 아버지의 마음이다.

나의 지금의 마음이다.

그렇다고 이런 나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다.

아들에게 심각한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아들이 고통을 참아가며 순례길을 걷고 있으니 말을 할 수도 없다.

이제나 할까?

말을 하지 말자.

아니다. 순례길에 묻고 가자

이러한 복잡한 심정을 순례길에 묻고 가야 하는 것이 지금 내가 취할 옳은 행동일 것이다.

영원히 다시 살아나지 않도록 ….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아들은 그때그때 나에게 말을 해 준다고 한다.

그 말은 마음에 품고 잊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힘들고 어려움을 극복하며 걷고 있기에 아들에 대한 나의 서운함 아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것들을 말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결국 묻고 가자. ‘묻고 가자’ 하며 되새기고 있다.

드디어 오늘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성당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 주어라하고 아들에게 요청하자. 이를 묵살하고 관광안내로 급하다고 가버린다. 가족을 생각한다. 아버지를 먼저 챙긴다면 사진을 찍어 줄 수도 있는데…

신부님과 요꼬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닌가?

오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숙소를 구하기 위해, 아버지를 생각해서 인터넷을 하기 위해 그랬다는 것이다.

좋다. 그렇게 이해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이 짧았다는 것을 반성한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서운함. 아들에게 요구하는 심각한 이야기도 접기로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때의 아들의 행동을 나는 이해 할 수가 없다.

혼자 고뇌하고 아들이 성숙하기를 기도한다.

아들과 함께 걷는다.

걸으면 해결되겠지….

걷고 또 걸으면서 아들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틈은 이유 없이 접기로 했다.

아들은 똑똑하다.

또 한 가지 엄마가 통화를 하고자 하면 거리는 둔다. 통화를 거절 한다. 이유는 잘 있다는 것을 가식적으로 말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굳이 힘들고 어려운 것은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로 느낌으로 고통스럽고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통화를 함으로서 엄마에게 전달 될 때 멀리 계신 엄마가 고심하고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든지 순례길을 완주하고 완주증을 보여드리면 된다. 후에 이렇게 힘들었다고 지나가는 말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낫다. 지금 힘들다고 시시콜콜 표현하게 되면 먼 곳에 있는 엄마를 걱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아들이 대견하게 느끼는 하루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물이 풍부한 스페인:순례길에는 음수대 시설이 잘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