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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山박보영 이야기/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19)

427일 수요일 제16일째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25

<출발>오전 6시 이십오

<도착>오후 433

<걸린시간>10시간 8

<출발-----------도착>

Carion----- sahagun: 41.5km

<날씨>

쾌청한 날씨였으나 오후 들어서면서 구름 낀 하늘로 바뀐다.

낮에 햇볕이 있어도 춥다. 아침부터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리고 추웠다.

아직까지 이곳 날씨는 아침저녁으로 추운 날씨가 계속된다.

다른 해 같으면 4월 하순에는 추위가 없는데 올해는 이상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나쁘지는 않다

<숙소> hostal LaCodorniz 2인 실

우리나라의 모텔 수준이다 오늘은 10시간을 걸었기에 기존 알베르게를 피하여 조용히 쉬기로 했다.

 

<2단계 순례길 수정> (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17KM의 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이렇게 부르고 싶다

신앙인의 길, 치유의 길, 기도의 길, 묵상의 길, 눈물의 길, 웃음의 길, 배려의 길, 고통의 길, 기쁨의 길, 대화의 길, 자신과의 싸움의 길, 환희의 길, 물과 함께 하는 길, 새소리와 함께 하는 길, 만남과 헤어짐의 길,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 커피와 함께,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길, 사귐의 길, 외로움의 길, 다짐의 길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구체적인 설명을 붙인다.

-왜 신앙의 길인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야고보 성인이 그리스도를 전파하기위해서 이길을 걸었다. 지금도 가는 곳곳에 성당이 중심이된 마을이 있다. 순례길을 걸으며 성체조배도하고 기도도하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리고 미사에 참여한다. 정말로 신앙인이라면 꼭 걸어야하는 길이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나를 생각해 보고 고통을 참으며 자기성찰의 시간의 연속이기에 나는 신앙의 길이라 말하고 싶다.

-왜 치유의 길인가?

모든 운동의 기본이 걷기이고 가장 좋은 운동이고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 걷기이다.

걸으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 진다. 특히 당뇨 혈압 심혈관 질환에 좋은 운동이 걷기 운동이다. 먹는 것을 거칠게(즉 과식하거나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한 음식이 아님) 먹을 수밖에 없고 간단하게 심지어는 걷기위해서 먹는 정도이기도하다. 전 구간을 걸으면 보통 5-10kg은 체중이 빠진다. 그러나 작은 질병은 치유된다.

-왜 기도의 길인가?

나의 경우 깨어 잇는 한 늘 기도 하게 된다. 어려움이 있던지 고통이 따르던지 기쁨의 순간에 기도를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기도하며 걷는다. 기도하며 생활한다. 그러니 기도의 길이 된다.

-왜 묵상의 길인가?

묵상하며 걷는다. 의도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나를 돌아보게 된다. 생각하게 된다. 묵상하게 된다.

-왜 눈물의 길인가?

감격의 눈물, 통회의 눈물, 기쁨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아름다운 풍광에, 고통스런 아픔 때문에 자기를 되돌아보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어느 때는 멀리 떨어진 가족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눈물의 길이다.

-왜 웃음의 길인가?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이 결정해서 와서 걷고 있다. 물론 끌려서 마지못해 걷는 사람도 있겠지? 그러나 그런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렇게 왔다고 하더라도 걷다보면 이 길에 매료 된다. 하루하루 고통을 참고 견디다보면 즐거움과 환희를 맛보게 된다. 여하튼 걷는 사람들은 웃으며 인사하고 웃으며 즐기고 웃으며 반기는 모습을 본다. 기쁨과 환희 해 냈다는 뿌듯함에 늘 웃는 생활로 하루하루를 즐기며 걷는다. 웃음이 넘치는 길이다. 언어 피부 외모 상관없이 웃음이 넘친다. 웃음의 길이다.

-왜 배려의 길인가?

걸으면서, 알베르게에서, 카페에서, 식당에서, 샤워장에서 순례자들은 남을 배려한다. 차츰 배려하는 생활을 배우게 된다. 자국민을 만나도 그들은 순레자들을 크게 배려해 준다. 건널목에서나 교차로에서 그리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순례자들을 크게 배려한다. 그들의 행동에 늘 감탄한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배려를 배우고 배려를 몸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왜 고통의 길인가?

800km를 걷는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이 따른다. 육체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을 맞게 된다. 갑자기 닥치는 육체적인 고장을 접하게 된다던지 음식이나 물이 맞지가 않아서 겪는 고통, 잠자리에 따른 고통, 여러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니 그에 따른 발생하는 일들이 고통으로 다가올 수 있다. 상상을 초월한 고통이 따른다. 또 도사리고 있다. 매일 매일 앞에 다가오는 도로사정이 나에게는 고통의 순간으로 닥쳐오게 될 수도 있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고통의 길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를 긍정적으로 극복해야하는 것은 각자의 해결과제라고 할 수 있다. 오직 산티아고에 입성하여 환희의 노래를 부르는 그순간을 생각하며...

-왜 기쁨의 길인가?

무거운 배낭을 지고 비바람을 이겨내며 그날 그날 해 냈다는 기쁨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매일 매일 기쁨의 순간을 맞는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어려움을 참아가며 걷게 되는 것이다. 기쁨이 쌓이고 쌓여 순례길을 완주하게 된다. 기쁨은 산티아고에서 완주증을 받는 순간 극치에 달한다.

-왜 대화의 길인가?

일 년에 산티아고 길을 약 17만명이 걷는다고 한다. 이들은 서로 만나서 대화하며 걷고 또 숙소에서 나 카페에서 만나면 서로 대화를 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다.서로 나선다 너 스페인의 g 영지물 자연환경 만나는 사람 모두가 낯설지만 이들은 만나면 인사하고 마음을 다하고 서로 대화를 한다.숙 소나 샤워장 세면장 식당 또 걷는 길 만나는 곳곳 에대해서 서로 재미 있는 대화를 한다 회사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대화의 길이라고 할 수 있

-왜 자신과의 싸움의 길인가?

처음 출발할 때부터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어느 때는 지루하고 오늘 때는 힘들고 오늘 때는 목 마르고 오늘 때는 덥고 오늘도 춥고 어른들은 비오고 바람불고 햇볕이 난다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 해야 한다 지칠 때도 있 다 더이상 걷지도 못 할 때도 있 다 또 몸이 아프거나 고장 난 때도 있 다이 모든 것 자기가 투자기반의 해결해야될 과제 다 또 자기 의지나 육체나 너는 정신적인 면에서 자기와의 싸움 이루어진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자신과의 싸움의 길이라고 하고 싶 다

-왜 환희의 길인가?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접하고 감동의 탄성을 지른다. 또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해냈다는 자부심과 기쁨을 누리게 된다. 순간 순간에 환희를 맛보게 된다. 그래서이 길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환희의 길이라고...

-왜 물과 함께 하는 길인가?

스페인은 깨끗한 물이 풍부한 행복한 나라이다. 순례길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음수대에서 깨끗한 물이 콸콸 나오는 정말로 축복받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물을 따라 걷는 길이라고 할 수 있 다 걸을때마다 놀까 옆으로 오르는 개울물 강물은 시원한물 소리를 내면서 순례자들을 위로 해 주고 있 다 개울이나 강에 흐르는 물이 너무도 많아서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내내 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풍족한 물은 우리들의 마음을 풍족하게 해 준다.

순례자들을 위로해 주는 물소리를 들으며 물과 함께하는 순례길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왜 새소리와 함께 하는 길인가?

스페인은 오염과는 거리가 먼 나라라서 그런지 가는 곳곳마다 각종 새들을 볼 수 있다. 그 새들이 내는 아름다운 소리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다. 어둑 컴컴한 새벽에 길을 나서도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소리. 햇볕이 내리쬐는 들판을 걸어도 하늘에서, 들에서 산에서 지저귀는 새소리, 도시를 끼고 도는 변두리 길에서도 역시 들려오는 새 소리는 아름답다.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멈추게 한다. 이 새소리에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왜 만남과 헤어짐의 길인가?

아침에 숙소에서 나오면서 몇 몇 사람들이 함께 걷다가 얼마 걸어가면 자기 걷는 속도가 있기에 헤어진다. 새로운 사람을 또 만나게 된다. 오늘 만났던 사람은 며칠 뒤에 다시 만나게 되고 만났던 사람이 헤어진다. 이렇게 계속 되는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특징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길이라고 말 할 수 있 다

-왜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인가?

어느날 숙소에서 모임을 갖는데 그 숙소의 책임자가 오늘 우리 숙소에 묵는 사람들의 나라가 25개국이라고 한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다. 얼굴모양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른 세계 여러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다. 함께 걷기에 서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문화를 접 하게 된다. 만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세계인이 함께 하는 길이다.

-왜 커피와 함께하는 길인가?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 순례길을 걷다가 중간에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하게 되었 다. 생전 처음 이렇게 맛있는 커피를 마셔본다. 그후 나는 가끔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곤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커피와 함께 하는 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여러 언어가 교차하는 길인가?

수 많은 나라에서 순례자가 이길에 모여든다.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다. 각 나라의 언어들이 교차하는 순례길이다. 흥미 롭지 않은가? 그렇게 다른 언어를 가진 사람들이 공동체적인 생활을 하는데도 아무 불편을 못 느낀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가 교차 하는 길이다.

-왜 사귐의 길인가?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고 또 만나고 헤어진다. 거의 한 달 동안 많은 사람들과 교차한다. 만나는 사람들은 정겹고 다정하게 서로 자기 얘기를 하며 순례길을 즐기고 있다. 함께 만나서 계속 쭉 걷는 사람도 있고, 한 번 만났다가 며칠 후에 다시 만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만날 때마다 기쁨을 나눈다. 분명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귐의 길이다.

 

<순례길 풍광>

숙소에서 나와 마을의 시멘트 길을 걷는 다.

이어지는 17키로 라는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긴 길을 걷는다.

길 좌우 후에는 푸른 보리밭 밀밭 푸른 풀밭이 펼쳐진다.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평평한 흙길이라 걷는 데는 어려움은 없었다. 이후 terra di llos 까지 예정을 했다가 13.2km를 더 걷자고 아들과 합의하고 41.2 km를 걸었다.

대평원을 가로질러 걷는 동안 새소리를 원 없이 들었다. 계속해서 뒷바람이 도와주어서 걷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3단계로...>

3단계 순례길에 대하여 수정하는 하루였다

1단계 입문, 2단계 주님과 만남, 3단계 환희로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나누고 싶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나는 나름대로 3단계로 정리 할 수 있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왔던 가서 부딪히며 해결하자고 왔던 처음은 낯설고 힘들고 어설프다. 적응하여 가며 걷게 된다. 그 거리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나에게는 처음 1주일이란 기간은 입문단계라고 할 수 있다.

바로 1단계 입문 단계를 지나게 되었다. 적응하려고 노력도 했고, 왜 왔는가를 후회도 해보게 되고, 후회하려면 왜 왔는가? 마음도 다잡기도 하는 단계였다. 이것도 못한단 말인가! 나는 할 수 있어! 더 열심히 기도하며 걸어 보았던 시기이다.

2단계 주님과 만남의 단계이다. 주님! 저를 통해서 주님이 표현되기를 기도합니다.’ 감사의 기도와 매달리는 기도, 통회의 기도 등 많은 기도의 연속이라고 할까? 이 기간 중에는 많은 체험을 하게 된다.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웃을 수 있는 나를 찾게 되었다. 아들의 장점을 바라보는 나를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2단계로 주님과 만남의 단계라고 이름하고 싶다.

3단계 환희라고 부르고 싶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 몇일을 걷는 단계는 분명 기쁨과 환희를 맞보게 된다. 보람과 통쾌함과 설렘 그리고 만감이 교차하게 된다. 해냈다는 가슴 터지는 통쾌함은 그 누구도 맛볼 수 없다. 마지막 단계를 환희의 단계라고 부르고자 한다.

 

<두번째 흘리는 눈물>

17km 대평원의 길을 걸으면서 3단계 산티아고 순례길의 이름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길에서 산티아고까지 565 km 남았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목을 만난다.

메세타 길이다. 나는 이 길을 걸으면서 행복한 눈물로 펑펑 흘렸다.

오늘 대평원 17km 길을 걸으면서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가?

펼쳐지는 아름다운 대 자연의 풍광,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감상이라기보다는 느낌이다.

맑은 하늘, 펼쳐진 푸르른 평원, 맑은 공기, 평화롭게 날며 노래하는 많고 많은 새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만나지 않을 것 같은 지평선 이 모두가 나를 황홀하게 만들며 행복의 눈물을 흘리게 한다. 주님께 감사 하면서 두 번째로 흘리는 눈물이었다. 무척 행복하였다.

 

<오늘의 묵상> 주님 저와 함께 하소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기를 늘 기도 하지만 기도를 할 때나 생활을 할 때 나 실제 적으로 나는 주님과 함께 하지 못함을 마음 아파하며 주님께 매달리곤 한다. 그리고 늘 고민하여 왔다. 오늘도 걸으면서 묵상한다. 주님! 저와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어제 나에게 와 닿았던 이야기가 있었다. “괜찮아 잘 될 꺼야 하느님이 계시기 때문에.”

오늘은 갑자기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계심을 느끼게 된다.

명동 성당에서 신년 미사를 드리는 데 주교님께서 신자들이 한 해 신앙생활을 잘하라는 덕담으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화가는 자기의 그림에

작가는 자기의 글에 계속 관심을 가진다.

더구나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께서는 우리가 버리지 않으면 우리에 대하여 관심과 사랑을 끝까지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님을 믿고 열심히 기도하세요.’

그렇다! 나를 창조하신 주님께서 나를 분명 사랑하시고 계심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순례길에서 무탈하게 지낼 수 있었고, 순례길을 출발하면서 나타나기 시작한 몸의 가려움증 지금은 없어졌다.

좋은 날씨를 주셔서 날씨 때문에 고생하는 일은 전혀 없었다. 날씨가 너무너무 좋아서 즐기며 걷는다. 이곳에 올 때까지 지간신경증으로 발에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를 받다가 왔기에 긴장된 하루 하루였지만 지금까지 아무 증상 없기에 감사한다.

순례길에 오게 해 주심 이 모든 것이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고 계심을 확신하게 된다. 그렇게 믿고 싶다. 걸으면서 생각이 멈출 때, 고통이 따를 때, 힘들 때, 끊임없이 주모경을 바친다. 그러면 생각이 정리되고 통증이 없어지고 힘듦이 적어진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글 1>

어느 수녀님께

찬미예수님

보내주신 메일을 몇 번이고 열어보았습니다.

수녀님의 정성 어린 성원의 메세지를 읽고 정말로 우리 부자는 힘을 얻고 걷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곳 시각으로 오전 430분입니다. 한국 시각은 7시간 전이기에 저녁 930분 되겠네요

특히 오늘은 수녀님을 생각하며 글을 씁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는 날부터 수녀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걸으면서 주님께 수녀님의 영성 생활과 몸이 건강 하시를 기도드립니다.

**

+ 그리스도의 평화

답이 너무나 늦었습니다!

얼른 답을 드리고 싶었는데 제 마음 자리가 힘드니

넋두리 할까 걱정되어서 답을 못 드렸어요^^*

저는 무사히 안착하려고 하는 중이고요

사실 좀 어렵네요. 예상은 했지만...

모르고 시작하는 어려움은 겪어낼 수 있지만

미리 예상하고 시작한 어려움이 되려 더 감내하기

힘든 경우가 있죠? 지금 제가 그러네요!

그런데 길을 나서는 '동무'(그리 칭해도 되겠죠^^)

순례를 하면서 기억해 준다고 하니 그저 그 힘에 기대어 봅니다!

염치없이....

 

아드님과 함께하는 순례는 어떤 기분인지 감히 상상이 가지 않아요.

그래서 더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순례의 길을 통해 삶의 방향을 다시금 정비하시는 유스티노 형제님을 생각하며 나이 70이 되니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쫓아도 도()에 어그러지지 않았다'는 공자의 말씀을 떠 올려 봅니다. 힘이 되시려는지요....

 

서울과 산티아고!

오늘 또 하나의 기도 줄이 연결되었습니다.

그 어떤 와이파이 보다 강력한 영적 와이 파이로 연결되었으니

수신은 양호할 것이며

보이지 않는 유대는 더욱 끈끈해 질 것입니다!

아드님 이름 언제 알려주실 수 있으면 알려주세요.

함께 이름 부르며 기도 할께요.^^

 

한 걸음 한 걸음 복 되고 복 된 걸음이 되시도록

몸도 마음도 함께 무탈하시도록 기도 보냅니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동무'에게

늦은 답장으로 미안한 마음을 기도에 꾸꾹 눌러 담아 전하며..00수녀드림

**

이 메일을 읽으며 힘이 생기고 더욱 기도를 열심히 하게 된답니다.

항상 밝은 미소로 신자들의 신심을 불러일으키시고, 신앙생활의 바로 미터를 제시하시면서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수녀님의 영적인 지도로 우리 신자들은 힘을 얻어 행복한 신앙생활하게 되었고, 우리 교회가 나아갈 사회적 교리를 실천하는데 게을리 하지 않고 있습니다.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1887-1968) 신부님은

기도하십시오. 마지못해서라도 기도하십시오. 많이 기도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적게 기도하는 사람은 위태롭습니다. 의지를 보시고 상을 주시는 것이지 감정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신 것이 오늘 수녀님께 글을 쓰면서 더욱 간절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신앙생활에서 나약해지고 기도생활을 게을리 하게 되어 고민하고 어려울 때 친절하게 상담해주시고 조용히 바른길을 알려주셨습니다.

지금껏 잊지 않고 감사하게 마음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순례길에서 쓴 편지글 2>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사랑하는 당신에게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같이 왔으면 좋으련만 미안하군요.

오늘은 17km의 대평원을 걸으면서 당신에게 미안하지만 너무 행복해서 감동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혼자 온 것이 미안하고 또 미안 했답니다.

오늘은 태원이와 이야기를 많이 했지요. 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강요하거나 내 이야기를 가급적 많이 하지는 않기로 했으니 걱정 할 것은 없어요. 나는 그것을 지켰으니까요. 그런대로 태원이의 성숙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견하더군요.

그런데 의외로 내가 사람을 평가에서 대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덕목인데 태원이가 지적을 하더군요. 앗 차 싶었어요. 내가 잘 못살았구나. 반성을 많이 했지요. 당신 생각도 그런가요?

여하튼 아들 눈에 아버지가 그렇게 비쳐졌다면 변명할 여지 없지 않소.

지금부터라도 나는 낮은 자세로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않는 겸손하고 온유한 자세로 살아가리다.

오늘 미사는 4곳의 성당을 찾아다녔지만 모두 미사가 없다고 하네요. 요양 병원에서 미사를 드렸어요.

또 다른 느낌이더군요. 환자와 노인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생의 마지막에서 어떻게 나를 처신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미사였어요.

감사합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괜찮니?”

, 참을만해요.”

쉴까?”

더 갈 수 있어요.”

굳건히 걸으려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대견함을 느낀다.

아들이 나에게 하는 말에서

아버지에 대하여 아들은 말한다. 소통이 안되고, 남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본인 말만 하려고 한다는 지적을 해 주었다. 이는 아주 충격이었다.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갖게 되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노력하고 절대 나는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점 또한 그 내용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내 말만 하는 점이 있지 않을까?’ 늘 생각하고 고치려고 있는 사항이기에 그렇지 않다고 나는 어느 정도는 자신하는 부분이도 하다.

그런데 아들한테서 이런 말을 들으니 충격이 아닌가?

70평생을 잘 못 살았다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아들이 있어 늦게나마 나를 돌아볼 수 있어 다행이다.

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데 이제 나왔다고 하는 것도 아들의 입에서 먼저 나오는 것을 나는 좋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아들, , 부인, 사위에 대하여 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너희들은 아버지를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니 아들은 그 나름대로 본인의 입장을 이야기하여 주더군.

내가 잘 못 생각하고 있구나 하면서 그런 아들을 고맙게 생각했다.

며칠 전 아들의 불만을 기록으로 남기고 그 내용을 이제 말하려고 한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맥주 한 잔 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런데 일본에 대한 생각은 나와는 전혀 달랐다.

이것으로 오랜 동안 논쟁을 벌렸지만 좁히기 힘든 면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역사적인 사실을 근간으로 나는 지금껏 일본을 무시하고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니 아들의 말인 즉 그들이 나에게 무슨 해 되는 일을 했느냐는 것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로서는 기절할 일이다. 장시간 언성을 높이기도 하며 이야기를 했지만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바로 개인주의적인 발상이라고 나 할까? 나에게 직접적으로 관계가 되지 않는 것은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역시 성인과 젊은이들의 생각에는 통 할 수 없는 견해 차이를 보였다.

더 이야기 하며 아들과 마음 나누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열심히 이야기하며 힘차게 걸을 것이다.

사랑한다. 아들아

 

<! 아들아>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아들이 하는 말인 즉 아버지는 사람들을 대면 할 때 직업 외모 등으로 먼저 판단하고 대하며 좋고 나쁨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자기도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진지한 얘기를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자랑스러웠다. 점심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으니 활기차게 순례길을 걸을 수 있었다.

혼자 생각으로 걸으면서 아들아 고맙다. 그리고 대견하구나.

이제부터는 아들을 믿고 성인 된 아들로 대해 주어야 하겠다.

아들과 함께 순례길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순례길에서 보는 해돋이
성당의 모습

 

성당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