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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山박보영 이야기/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14)

422일 금요일 제 11일차

<묵주 기도는 영광의 신비:청원>

<기상>오전5시 21분

<출발>오전 7시10분

<도착>오후 2시40분

<걸린시간> 7시간30분

<출발 —도착>

Belorado---Atapuerca: 30km

<숙소>El Peregrino

< 날씨 >

흐리고 쌀쌀하다가 2- 3시간 후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바로 비가 온다. 이슬비로 바뀌다가 잠시 멈추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멈추고 해가 나는 듯한 날씨

<11일 만에 정리하는 나만의 순례 길 걷는 요령>

1. 바른 자세로 걷는다.

2.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주모경을 바친다.

3. 앞에 가는 사람 추월 하려 하지 말고, 뒤에 오는 사람을 보고 우월감을 갖지 않는다.

4. 배낭이 무겁다고 생각하지 말고 가볍다고 생각한다.

5. 오버패스 하지 않는다.

6.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늘 기뻐하자

7. 여행자의 3대 원칙 지키기에 충실하자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8. 생활의 싸이클을 만들어 적응하자.(규칙적인 생활)

9. 내일 코스를 정해서 나의 몸에게 알려준다. 어디에서 어디까지 가겠다고 말해 주면 신기하게도 몸이 잘 듣고 따른다.

10. 출발 전에는 반드시 준비운동을 철저히 한다.

11. Break time. 을 갖는다. - 7일 혹은 10일마다-

12. 물은 생명수로 생각하며 물 보충(1일 2L)에 노력한다.

13. 숙소에 도착하여 찬물로 무릎, 발목 관절을 찜질한다.

<오늘의 묵상> 슬픔(무심)

어려움과 고통이 겹쳐져서 극도의 달하는 슬픔에 이르게 된다.

슬픔을 잘못 관리하면 절망이나 좌절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정적인 방향으로 관리 한다거나 소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한다면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그리고 슬픔의 기간도 길어진다.

좌절 절망 결국 우울증에 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방법으로 대처한다면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하지만 슬픔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나 자신을 해치게 되고 이것이 남에게 전이 될 때 결국은 남을 불행하게 만든다.

무심함은 상대를 노하게 만들기도 하고 슬프게 만든다.

결국은 나와 내 이웃을 불행하게 만든다.

순례길에서 마음과 정신에 해로움을 끼치는 불행의 씨앗인 슬픔, 분노, 무심함을 내려놓고 가리다.

지난날 세 가지 때문에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남으로 하여금 이를 통해서 불행하게 하였던 적은 없는지 반성할 기회이기도 하였다

슬픔 분노 무심함은 남은 내 생애에서 사라지도록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오늘의 주제> “.....”

Belorado를 출발하여 첫 마을에 이르러 성당을 방문하고 마을 주차장에서 현대 자동차 한대를 보았다. 조국애를 느끼게 한다.

힘들고 어려운 순례자의 길

오늘 내내 힘을 솟게 만든다.

오늘 30km 내내 마음이 흐뭇하다.

생각해 본다.

부엔 까미노를 외쳐주면 0.5km를 가볍게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부엔 까미노 하면서 와 웃으면 1km를 즐겁게 걸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각종 시설에 ‘환영’이라고 한글로 써 놓은 글씨를 보면 1km를 무작정 걸을 수 있는 힘이 솟는다.

차를 타고 와서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생수 한 병씩 나누어 주니 1km를 행복하게 걸을 수 있었다. 힘들고 고생스러운 때 주모경을 바치면 고통이 없어진다. 언제 어느 곳에서나 마을 지날 때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매시간 정각과 30분에 울리는 마을 성당의 종소리는 걷는 하루 종일 기쁘고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운전 하고 가면서 웃으며 흔드는 손을 보고 0.5km를 기분좋게 걷게 된다.

이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우리들의 순례길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것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완주 하게 되고

이것에서 힘을 받아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고통을 겪어 가며 고뇌하며 걷는 것이 아닐까!

<아버지/아들의 마음 나누기 >

아들과 나는 서로 마음을 모으기 위한 하루 인지, 아니면 갈라서기 위해 할 말을 하는 하루인지?

서로의 대화를 보면

아버지: 아베 수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요꼬(일본에서 온 젊은 여자 함께 걸었다)에게 나는 물었다. (평소 나는 일본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의미가 있는 물음이었다)

아들: 일본 사람들은 싫어해요. 그런 무시하는 말은 싫어한다.

(무슨 말만하면 즉 조커를 던지면)

아들: 일본 사람은 어떻고 저떻고 하며 토를 단다. 해명을 하려한다.

아버지:와인을 마시면서 와인을 받을 때 “이렇게 하여라”

아들:그 정도는 알아요

(번번이 이런 말을 한다. 이는 어른한테 하는 말투냐?)

아들: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제가 여지껏 못했던 효도를 하기 위해 왔다.’ 고 하지만

아버지:‘무엇이 효도인가?’

(지금 한다며 무엇을 하는 것인가)

또 다른 경우에 무엇을 물어보면 무시한다고 한다

아들: 아버지 빨래 한번 세탁 코너에 가서 해 보세요.

(한번 시켜보는 말투로 대한다.

아버지:4월 22일에는 알베르게에서 주인이 앉으라고 할 때 뒷방 노인 취급하는 느낌을 받아 아주 싫었다.

아들: 신부님과 사담을 하는 자리에서 신부님께서 부부 싸움 한 번도 하시지 않고 사셨다면서요? 제가 부부 싸움 하시는 것 보았는데요.

아버지:언어 표현에서 꼭 토를 달더라

(외국인과 대화하는 장면을 보면)

아들:무엇이라고 했어요?

영어를 제가 가르쳐야 하겠네요

아버지:대접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예의범절을 지키고 사사건건 토를 달지 말라.

와인 파티 때

아들: 따로 몇 일 놀아도 “괜찮으시겠지요?”

아버지: 어떻게 하란 말이냐

내가 할 수 없단 말인가?

‘무시하고 제 말을 내세우는 못난 행동’

아들: 외국사람을 툭툭 치며 부르는 것을 외국사람들은 싫어해요 하시지 마세요

아들: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반말하세요 말을 놓으세요 놓아서 되나요

아버지:엄마 아빠가 일본놈들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는가?

정도를 지켜라

이런 대화로 하루 종일 무거운 하루였다

< 순례길의 풍광>

30km를 지루할 것 같지만 지루하지 않고 힘들 것 같지만 나름대로 가볍게 완주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부모와 두 아들의 가족이 인상적이었다.

순례길 중간 중간에 “환영” 장승, 도로에 장식해 놓은 것, 부엔 까미노등등 볼 것들이 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2시 30분 알베르게 주인은 식사하러 갔으니 3시 30분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Bed 16 개 남았다는 메모에서 여유를 느낄 수 있었다.

독일에서 모녀가 온 팀. 밝고 명랑하다. 함께 테블에 앉아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오늘 걸으면서 성당을 세 곳이나 지났는데 폐허된 곳, 동네에서 떨어져서 지나친 곳, 우리가 들린 곳이다. 한 성당에 들러 성체조배 하고 봉헌초 2개를 사서 봉헌하고 기도하였다. 두개에 1유로다. 촛불하나는 아들, 하나는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을 위해 봉헌하고 기도하였다.

신나리라고 하는 아가씨를 만났다. 광양00교회 목사님 따님 이라는 사실에 놀랐다. 광양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에 세상은 좁구나.

영어 일어 구사 능력이 우수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려면 외국어 구사능력에 따라 많은 사람들과 대화가 가능할 수 있고, 서로 대화를 못 할 수도 있겠다.

알베르게는 6명이 같이 쓰는 방을 택하였다.

아침에 일어나자 저녁부터 왼쪽 무릎에 통증이 있었다.

긴장되는 하루였다. 아침에 신부님께서 파스를 주셔서 붙이고 점심때는 관절 영양제라고 선트통 200 두 알을 주셔서 먹었다. 그리고 무릎 보호대를 하고 걸어서 그런지 통증을 못 느끼고 걸었다.

오늘도 무사히 걷게 되었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

어제는 세탁을 하지 않기로 한 날이다. 그래서 오늘 신은 나의 양말 두 켤레 아들의 세탁물 비닐 주머니에 넣었는데 아주 싫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에는 내가 몸종인가요? 하는 말투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투인가?

얼마나 긴장 되고 힘들었으면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 가?

어느 날은 점심 간식을 나의 배낭에 넣었으면 하는 눈치다.

자기 배낭은 작다는 것이다

자기 짐을 적게 하려는 눈치다. 아들과 나만의 문제다. 누구에게 말할 수없는 창피스런 사이가 아닌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자기 몸을 이토록 아끼려고 하나?

아버지의 나이는 생각지도 못하는 가?

왜 이렇게 키웠나?

힘들어서 그렇겠지만 ...

내가 다 짊어지겠다.

순례길에서 아들에 대한 나의 희생은 분명 아들을 변화시키겠지 하는 마음으로 ...

아들이 나의 짐에 넣기를 바라면 마다 않고 나의 짐에 넣는다.

하지만 미치겠다.

내가 잘 못해서 그렇지

내가 잘못 키워서 그렇지

지금의 이러한 사안들을 아들에게 언젠가 말을 해야 할까

나의 십자가로 생각하고 지고 가야하는가?

나의 희생을 감수하겠다.

나는 그렇게 걸었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오늘은 혼자 걸으며 깊은 묵상을 하기로 했다 .

언제 이 이야기를 털어 놓을까 말까 한국에 있는 아내와 함께 고민하나?

순례길을 함께 하시는 신부님과 상담 할까?

어제 미사에서 영성체 후 묵상을 하는데 갑자기 태원이를...

태원이의 모습을, 이기적인 태도 등등을 순례길에서 봉헌 하라고 지시하시는 말씀이 들리는 듯 했다.

태원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들어준다.

강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도 강요하는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 모든 갈등을 순례길에 묻고 가자.

그리고 기도하면 분명 변화 시켜주실 것이다.

“괜찮아 잘 될 거야. 하느님이 계시니까...”

그리고 성경에 돌아온 탕자를 보아라.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 탕자에게 조건을 붙였는가?

잘 잘못을 따졌는가? 무엇을 강요했는가?

무조건 받아주고 돌아와 준 아들을 맞아 기뻐하며 잔치를 벌리지 않았던가! 사랑하기에 순례길에 묻고 가기로 한다.

말하지 않기로 하자.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알베르게 앞에서

 

개와 함께 걷는 순례자들
순례길의 풍광

 

순례길의 물은 필수!
카페에서 잠시 쉼은 꿀맛
앗! 현대차 반가워요

 

순례길의 풍광

 

순례길의 풍광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