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笑山박보영 이야기/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20)

 

428일 목요일 제 17일째

<묵주기도 빛의 신비:청원>

<기상>오전 5시

<출발>오전7시 25분

<도착>오후 2시 52분

<걸린시간> 7시간 27분

<출발---------도착>

sahagun------ reliegos 31.5 km

<날씨>

흐리고 쌀쌀하다 10시 이후 해가 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쌀쌀하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햇볕은 강하다.

<숙소:알베르게> La Parada 2인 1실, 30유로, 새 건물로 쾌적하다

<순례길 풍광>

마을을 지나는 것을 제외하고 대평원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차도를 따라 차도 옆에 순례 길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이 거의 없어서 지평선을 향해 걷는 순례길이다. 흙길로서 걷는 데는 좋은 길이지만 지평선만 바라보고 걷고 있으니 걸어도 걸어도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미미하다.

그래도 걸어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서…

 

<오늘의 묵상> 통회

어제는 아들과 심한 언쟁을 펼쳤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나는 가족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다.

나는 우리 가정에서 아들, 딸, 사위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근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는 이야기를 지금껏 처음으로 아들에게 했다. 나는 무엇보다 가족을 우선 순위로 놓고 있는 데 너희들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는 말을 하니, 아들은 이 말에 대해 물론 아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제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내가 편하게 대해 주어서 아버지에게 말투나 대하는 태도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쌓여서 아들에게 말을 했던 것이지만 아침이 되고 보니 하지 않는 것이 나을 듯하다.

아들은 “아버지가 자기의 할 말만 하시지, 왜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으시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소통이 안 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나로서는 아주 치욕적인 말이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내가 평생을 살면서 그렇지 않도록 그렇게 살지 말자고 늘 나를 되돌아보면서 노력하고 노력했던 점이다. 내 일생 동안 가장 중점을 둔 행동 내용인데도 가장 가깝다고 하는 아들이 그런 말을 할 때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것은 70년을 내가 잘못 살아왔음을 반성 하게 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일본 사람을 보는 견해 차이다.

전혀 일치 하거나 좁힐 수 없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번 여정에서는 더 거론하지 않기로 했다.

아마도 아들 스스로 변화하지 않는 한 일본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은 나와 같아 질 수 없다. 인정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아들이 자기는 어느 때 하지 못한 효도를 하기 위해 이번 순례길에 아버지와 함께 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희생하여 아버지의 짐을 덜어주고 편히 모셔야 하지 않을 까?

그러나 자기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하지 않고, 너무 힘들면 얼굴을 찡그리고 짜증스런 표정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 들이다.

나의 욕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마음이 솔솔 피어오르는 것을 나는 기도하며 참고, 내가 잘못 생각한 것이지 내가 깊이 반성해야지 하며 나는 통회 한다.

일본 사람에 대한 나의 감정적인 견해를 얘기를 하니까 아들이 일본 사람 그들이 나에게 해 되는 일을 했는가?하고 되묻는다. 역사적인 문제나 우리 국민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아라.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말 할 수 있니? 하지만 단체적인 문제 우리나라를 위하는 행동 등은 필요하지요. 그렇지만 일본 사람 개인 개인이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기에 개인에게 또 일본인 모두를 싸잡아서 적대 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로

우리들이 순례길에 오른 것을 알고 무사히 완주 할 수 있도록 광영동 성당의 대자 대녀들이 매일 미사 봉헌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아들은 왜 기도를 하고 미사 봉헌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과 나와는 무슨 관계가 있는가,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라고 반문하는 것이다.

순례길 걷기는 엄밀히 말해서 내 개인의 문제인데 우리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저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시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염려와 도움이 있기에 존재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아들의 이러한 생각은 이기주의적으로 나만을 생각하는 마음의 표현이 아닌가?

통상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생각이 이러한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이후에도 이런 문제는 더 생각하고 처신해야 하는 나의 과제다.

아들과 아의 관계에서 나는 크게 반성한다.

내가 아들을 잘못 키운 것인지 아니면 그것은 아들의 삶이라고 해야 하는지? 그러기에는 내 마음이 하락하지 않는다. 이런 여러가지 생각들이 나를 몹시 괴롭게 한다.

순례길을 완주한 후에 책으로 남기고, 모임에서 이야기 할 기회가 있을 거라는 말에 아들은 나에게 말한 다.

그러한 일들은 순례길 걷기의 원래 목적에 왜곡된 것이 아닌가라고 나에게 묻는다. 남을 의식하고 남에게 보이고 남에게 보고하기 위해서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논쟁을 펼쳤다 하지만 하지 않았어야 하는 말들이 아닌가?

아들과 이런 언쟁을 한 후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아버지를 알아 달라고 하는 말은 할 필요 없었다.

소통이 안 되고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변명 할 필요도 없었다.

아들 눈에 그렇게 보였다면 아들 생각으로 그렇게 생각 할 수 밖에 없게 끔 내가 행동 했던 것이 아닌가? 내 잘못이 아닌가? 이런 모든 점을 오늘은 깊이 반성하며 침묵으로 순례 길을 걷고 있다

가슴을 치며 내가 70 평생을 잘 못 살아온 것을 크게 후회하며 반성을 하고 반성하며 걷고 있다.

오늘은 말 그대로 통회의 순례길이요. 통회하는 하루가 되었다.

 

<오늘의 주제 1> 주님 저와 함께 하시나요?

아침 숙소를 나오면서 오늘은 나의 인생에서 잘 못 생활한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은 내용으로) 모든 것들에 대하여 깊이 반성하고 후회하면서 주님께 속죄하는 순례 길을 걷고자 한다.

혼자 걷는다.

나를 채찍질하며 걷는다.

침묵으로 묵상하며 걷는다.

이렇게 걷고 있다.

10시 50분경 오늘 순례길에서 첫번째 맞이하는 마을에 이르렀다.

아 ! 성당 있구나.

사진을 찍으면서 성당으로 가고 있는데 300m 앞에 가까이 가니 자전거를 탄 한 사람이 성당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문이 열려 있겠구나. 성체조배를 할 수 있겠다.’ 생각하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때 성당의 종소리가 들린다. 가슴이 뛰었다. 매우 기뻤다.

오늘 오전 내내 깊은 반성을 하며 걸었기에 오늘의 성당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하고 평화롭게 하였다. 이어서 할머니 두 분이 성당으로 들어가면서 스페인어로 무슨 말을 우리에게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다만 순례길 스탬프를 찍을 수 있고 미사가 있다는 것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대에 촛불이 켜져 있었다. 신자는 할머니 두 분만 앉아 계셨다. 성체조배와 묵상을 하려고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미사가 시작되고 신부님이 입당 하신다

11시 미사인 것이다

얼마나 기뻤는지!

7시부터 지금까지 통회의 기도를 하면서 이곳까지 왔는데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것이 아닌가?

‘얼마나 힘드냐?’

‘아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니?’

‘와서 쉬거라.’

그리고 ‘괜찮다 잘 될 거야’ 라고 하시는 말씀이 미사 중에 들려오는 듯하였다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미사를 끝나고 성당 밖에서 쉬고 있는데, 신부님이 자전거를 타고 사제관으로 가시는지, 다른 곳으로 가시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를 보시고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으시며 축복 기도문과 싸인까지 해주시며 우리를 위로 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다. 함께 사진도 찍으시고 우리들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계속해서 기도를 해주셨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저와 함께 하시나요?’ 라는 질문에 응답을 받은 하루였다.

오늘 이후의 순례길은 환희에 찬 발걸음으로 마칠 수 있었다

 

<오늘의 주제 2> 채찍질

순례길에서 나는 나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곤 한다.

지금까지 잘 못 살아온 것,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가족이나 이웃을 위해 잘 못 행동한 것에 채찍질을 하는 순례길이 되었다.

자신을 내려놓고 나 자신에게 아무 거리낌 없는 삶으로 가기 위한 채찍질이다.

얼마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던가?

채찍질을 하다가 쉬는 시간이면 주모경을 끊임없이 바친다.

그러면 다시 채찍 맞은 상처는 아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채찍을 맞은 상처가 아무는 날 난 순례길 걷기를 마치게 될 것이다.

순례길은 나를 아프게 하고 있으며, 순례길 길에서 나 자신에게 하는 채찍질은 나의 앞으로의 삶을 남을 위하고, 이웃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으로 재탄생 하도록 만들 것이다.

 

< 아버지/ 아들의 마음 나누기>

어제 기록적인 순례길 걷기 41.1km 때문일까?

진하고 진지한 아들과의 대화 영향일까?

조심스러운 행동이다.

어색한 행동이다. 그렇지만 순례길은 각자가 걸어가야 할 길이기에 나는 나의 길을 걸으면서 침묵의 기도가 이어진다.

아들은 아들의 길이 있고 고뇌가 있고 스스로 깨달음이 있었으면 하는 기도 만이 아버지로서 할 일이라고 나는 오늘 생각하고 무언의 대화로 오늘을 마무리 한다.

순례길의 목적을 다시 재점검하기를 기대한다.

다시 한 번 정리하지만 강요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이렇게 하자고 제안 하지도 않는다. 다만 옆에서 지켜보며 살고자 합니다.

아들에게 무언으로 전달되리라고 믿는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직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을 전파하는 70대 교육자)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30대 젊은이)

순례길 풍광
순례길 풍광
아들과 함께 4명이 미사에 참례하고...
현지 신부님이 축복의 글을 주신다
성당모습

 

성당 종 탑에는 황새들이 둥지를 틀고...

 

순레길의 풍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