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笑山박보영 이야기/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아버지/아들의 마음나누기(5)

413일 수요일 제2일차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청원>

<기상>오전 416

<출발>오전 728

<도착>오후 340

<걸린시간>8시간12

<출발-----------도착>

RoncesvallesLarrassoana(라라소아냐도착): 27.4km

<날씨>일기 상태 아침에 매우 쌀쌀하다 낮에는 더운 정도

<특이사항>기록을 남긴다. 발가락 몇 개가 아프다. 그 외에는 정상이다 고맙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왼쪽 새끼 발가락 오른쪽 넷째 다섯째 발가락이 피멍이 들었다. 발톱도 멍들었다.

<숙소>Municipal

<알베르게 풍광>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들처럼 인사(목례라도)를 나눈다.

순례자 길에서 만났던 사람 더욱 반가워 한다.

잠자리에서는 서로 배려한다.

남에게 방해 되지 않을까 조심하고 조심한다. 식당에서는 서로의 삶을 이야기한다. 언제 보았다고 서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음식을 나누며 와인을 서로 건네는 정겨운 풍경이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걸친 옷이 무슨 소용인가 최소한의 옷만으로도 족하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녀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훌렁 벗은 채로 오가며 담소하고 웃음을 나눈다. 서로를 믿고 서로를 배려하는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이것이 순례길의 사람들이 묵는 알베르게다. 나는 이곳에서 아름다운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 이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에 사람들이 모이는구나. 다리를 절룩거리며 힘들여 걷는 어느 한국인 자매를 만났다. 무릎이 아파하지만 걷는다. 무리 하지 않고 정도껏 걷는다고 한다. 더 나이 들면 못 올 것 같아 지금 조금 무리를 해서 왔노라고 한다. 꼭 와야 하는 의무사항인양 말하지만 바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의 마음이 아닐까? 이런 사람들이 마음을 또 모습을 알베르게에서 느끼게 하고, 나를 더욱 생각하게 하고 나를 기쁘게 한다.

이웃을 찾을 수 있다.

나를 찾을 수 있다.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한다. 이들을 위한 나의 삶은 없을까?

70년을 나와 교육발전을 위해 그런 대로 열심히 살았다.

70 + 1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는가?

묵상하기 위해서 왔다.

540분에 떠나는 사람

앞에 걷는 사람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 순례길 풍경에서 인생길을 배운다.

앞서면 어떤가 뒤에 오면 어떤가

540분에 출발하면 어떤가

9시에 출발 하면 어떤가

조개와 같이 한곳에 모일 텐데

목적지에 다다를 텐데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승을 떠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의 묵상> 나의 삶 과거 현재 미래

나는 나를 위한 삶에 치중하며 살아온 듯하다. 오르지 나의 발전을 위해 앞만 보고 살았다. 나를 표현하려고 살아 왔다. 가족은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면서 나만을 위해 살기 위해서 급급한 듯하다. 실수 연속이면서 인정받으려 노력하지 않았나? 현재는 대립토론 전파에 열을 올리고 있다. 마치 최고인양.

그러나 아주 아주 다행인 것은 나를 불러 주는 사람이 있고,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감을 유지해 가고 있다,

주님께 드린다.

현재의 삶이 계속 이어지지 만을 고대한다. 앞으로 삶은 여유를 가지고 나보다는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지켜 주소서 이런 삶이 나의 삶이 되기를...

<아버지/아들 마음나누기 1>

아들에게 쓰는 편지

태원아 얼마나 힘들었니?

걷는 길도 힘들었고

지나온 몇 년간도 힘들었지?

나도 너의 안쓰러움을 생각하며

고뇌하고 참고 기다리다 쌓이고 쌓이면 터지고

그러나 그 후의 나는 마음의 고통을 겪으며 너를 바라보았단다.

함께 걸으며 너의 모습을 본다.

너를 생각한다.

희망이 없는 듯 하지만 목적지가 나오는 듯 순례길에서 너를 본다.

희망을 본다.

코스 결정, 일처리, 대인관계, 미사, 나를 위한 배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를 다시 생각한다.

믿는다. 태원아

능력 발휘 해봐라

만나는 사람 사람들

무슨 애환이 있어서 순례길을 걷고 있겠지?

인생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서 이 길을 걷고 있겠지?

순례길은 사람들을 부른다.

애환을 가진 사람들을 품어주려고...

희망을 가지라고 순례길은 나를 깨닫게 한다.

나를 내려놓고, 세상을 내려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걷다보면 내리막을 받아들이고, 오르막의 고통을 겪어내면 야호 환희의 목적지!

기쁨의 도착점 있듯이 인생은 어차피 순례자의 길

먼저 간다고 더 행복할까?

출발이 늦었다고 다른 길을 가던가?

빼박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생길은 순례자의 길이다.

동행이 있어 풍요롭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의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순례자의 길

고통을 참는 자만이 행복을 맛볼 수 있다.

순례길을 걷는 사람만이 고통 기쁨 환희를 느끼게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 사람들을 부른다.

태원아 힘들지?

삶이 힘들지?

함께하는 사람 있단다.

희망을 갖고 고통을 참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지고 삶을 살아가자.

순례자의 길을 걷듯이...

<순례길의 풍광 >

내리막길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이 있다 .

순례자 길에 내리막길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이어지는 길은

반드시 오르막길이 따른다.

그러니 내리막길은 오르막을 예고한다.

인생의 내리막길

또한 우리는 두려워한다.

누구나 내리막길을 원하지 않는 길이다.

망가지는 전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례자의 길에서는 내리막길은 편안하고 누구나 원하는 길이다.

다음에 오르막길이 닥칠지라도 지금 당장은 원하는 길이다

그러나 내리막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는 걱정의 길이다. 반드시 오르막을 예고하는 길인지 모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리막길을 두려워하지 인생의 길을 더 내리막길은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의 내리막길을 제동이 필요하다 사회적 길에서도 내리막길에 제동이 필요할까 그래도 우주는 받아들이며 근로자에게는 유유 63 적응하며 걸어야 한다

오늘의 26 킬로미터는 주로 내리막길에 연속이지만 긴장되고 힘들었다.

지브리 전에 가까운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오늘의 도착지를 지금 지브리 하느냐 아니면 라라소아냐로 하느냐 에 대한 아들과 의견을 조율하였다. 지브리에서 맥주 한잔 하고 따라서 라라소아냐로 가기로 했다 5.3 km를 더 걷고자 했다

<아버지/아들 마음 나누기 2 >

왜 일단 거부하고 볼까

왜 그렇게 키웠을까

긍정하면 안 될까

해보겠다는 의욕은 없을까?

적극성은 보이지 않더라도 해보려는 의욕을 표하면 안 될까?

이런 말들을 해야 하는가?

묵묵히 기다려야 할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책을 쓸 사람이나 찍으라는 이야기다.

그래서 오늘 나의 묵상 주제는 나의 삶, 과거, 현재, 미래의 삶으로 정하고 묵상하며 걷는다.

 

(아버지/40년 동안 교육자의 길을 걷다가 정년퇴임하고, 대립토론 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는 70대)

(아들/호주 유학을 다녀와서 직장을 접고, 아버지와 함께 순례길을 걷고자 나선 30대 젊은이)

순례길의 풍광

 

아들을 찰칵...